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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제청된 대법관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법원의 과거사 청산을 천명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후보 3명을 제청했다. 이들 후보들은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와 동의절차를 거쳐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함께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과거청산을 약속함에 따라 이번 대법관 제청은 크게 주목받았다. 지금까지 여론은 이번 제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일단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을 보인 점이 점수를 많이 받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우선 법조계 사람들 일색으로 구성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서 공개적인 추천과 검증절차도 없이 대법관이라는 중책을 맡을 인물을 선발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내년 7월에는 5명이나 되는 대법관을 한꺼번에 바꾸게 되는데 그때도 이와 같은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통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보다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인사들로 구성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대법관이 보수적인 인물로 대부분 채워진 상황에서 2명의 후보자가 개혁적인 인사라고 하여 균형을 맞추었다는 평가는 과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보다 진보적인 판결을 했던 법관을 대거 대법관으로 기용해야만 겨우 균형을 맞추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평가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에 제청된 후보자 중에는 사법개혁이라는 대의에는 맞지 않은 인사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김황식 후보자는 법원 행정처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법원의 '엘리트 코스' 출신이다. 그가 대법관이 되면 대법관 중 법원 행정처 출신이 2명으로 늘어난다. 이번에도 법원행정처 차장은 예외 없이 승진하여 요직에 간다는 전례를 그대로 답습한 꼴이 되었다.

시민사회는 사법개혁의 주요한 과제로 법원행정처의 폐지를 요구해 왔다. 그것은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법관들의 재판을 감시·감독하고, 법관들을 각급 법원행정조직에 편입시킴으로서 법관을 순치시키며, 인사승진을 미끼로 대법원이 선호하는 법적 지향을 하향전달하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인사나 기획, 정책연구 등으로 중견의 법관들을 장악해 법관들을 관료화시키는 정점에 법원행정처가 있다. 이렇게 대법원장의 지휘에 종속되는 법관들에게 양심에 따른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관이라기 보다는 관료로 성장해 온 김황식 후보자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더욱이 김황식 후보자는 1994년 김삼석 남매 간첩단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 사건은 안기부가 프락치를 활용한 함정수사였고, 당시 프락치로 활약했던 백 아무개 씨는 독일로 가서 양심선언을 통해 안기부의 공작을 폭로한 바 있다. 또 김삼석 씨는 안기부의 고문에 항의하며 자해까지 했다. 이런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김 후보자가 그에게 유죄선고를 했다는 것은 인권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법관으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 아닐 수 없다. 대법관이 된 그가 공안, 시국사건에서 냉전 수구적인 판결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대법원이 인권의 신장과 헌법 기본권의 수호를 위한 사법정책 집단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런 인사는 대법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 남은 것은 11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이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특히 인권적 관점에서 대법관 후보자들을 철저히 검증할 것을 당부한다. 현재로서는 그것만이 사법개혁에 부정적인 인사의 대법관 임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