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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아펙에 쫓겨 다니는 노숙인들

아펙(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거리노숙인 특별보호 관리대책'이라는 회의문건이 공개돼 수용위주의 노숙인 정책에 관한 비난의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가 작성한 이 문건은 도시미관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10월 안에 노숙인을 시설에 입소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계도기간과 집중상담기간에 시설로 입소시키지 못한 노숙인들을 경찰의 협조를 받아 경범죄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는 것. 이는 사실상 강제 수용방침이나 다름없고 노숙을 '범죄화' 하고 있어 노숙인 당사자는 물론 관련 민간단체들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가까이는 월드컵과 아셈, 멀리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까지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노숙인은 언제나 보이고 싶지 않은 존재로 여겨져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아펙 정상회의를 앞둔 부산시의 조치도 사실상 이런 맥락에서 비추어보면 새로울 것도 없고 부산시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다.

IMF 이후 한국사회에 비로소 공론화된 노숙인 인권문제, 7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강제 수용정책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숙이 우연한 사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님은 지난 7년 동안 노숙인의 존재로 증명됐다.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 높은 주거비 부담 등 한국사회에서 노숙은 개인의 무능이 아닌 사회적 구조로부터 파생된다.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한계계층의 빈곤화는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노숙인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가진 자 중심 경제 질서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이다. 응급조치로서의 시설 입소는 일시적으로 필요할 수 있으나, 노숙인들이 시설을 벗어난 후에도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박탈당해 다시금 노숙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부터 노숙인 인권정책의 출발로 삼아야 한다.

부산시는 노숙인을 수용시설에 입소시키겠다는 발상을 당장 철회하라. 지난 7년간 경험에서 수용중심의 지원책이 노숙해결의 열쇠를 제공하지 못했음을 직시하고 '빈곤 없애기' 차원에서 주거·고용·의료 등 사회공공성을 높이는 정책으로 전환하자. 또다시 예산타령을 할 것인가? 아펙을 치르기 위해 지출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라면 부산에 거주하는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건강, 교육 등 공적인 인프라를 충분히 구축할 수 있다. 전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 폭력이 판치는 야만의 세계로 몰아가는 '가진 자들만의 잔치'인 아펙으로 인해 노숙인이 인간다운 생존을 유지할 수 없고 그나마 확보한 생존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는 일이 또다시 재연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