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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촛불은 무죄, 집시법이 유죄다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희생당한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를 주최한 여중생범대위 김종일 집행위원장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17일 김 씨에 대해 "사진 신고를 안한 촛불집회는 실정법 위반"이라며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당시 추모집회에 참가한 모든 시민들이 실정법 위반자가 되어버렸다.

사법부는 지난해 '탄핵반대 촛불집회' 이후 논란이 된 '야간집회 허용/금지 여부' 문제에 대해 '금지'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추모집회가 "순수한 추모의 범위를 넘어 사전신고가 필요한 집회였다"며 "집회가 금지된 일몰 후에 촛불시위를 벌인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그동안 촛불집회 주최측은 집시법 상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을 의식해 촛불집회를 '추모제' 혹은 '문화제'라 주장해왔으나, 논점은 '촛불집회가 문화제냐 집회냐'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문제는 집시법의 '야간집회 관련 조항'을 '일반적 금지 조항'으로 인식해온 경찰과 사법부 측에 있다.

1962년 제정된 집시법은 1989년 5차 개정 시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했다. 이후 1994년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제10조 2항의 단서는 경찰의 재량에 따라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정신에 의거해 질서유지인을 두면 금지,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집회의 자유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고 직장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시의적절하게 참가하기 위해서는 야간집회가 불가피한 것이 현대사회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행 집시법은 여전히 죄형법정주의의 한 파생원리인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범죄의 구성요건과 형벌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법률 원칙이다. 이번 판결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법적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막연한 표현은 법의 금지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크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막연해서 무효(Void for Vagueness) 이론'을 통해 막연한 법규정은 그 자체가 위헌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헌재의 결정을 위배하면서까지 기본권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린 이번 결정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오히려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위헌 소지가 있는 집시법 개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합법화하면서 최소한의 예외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집시법 개정의 올바른 방향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2월 24일 열린 '여중생 촛불시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

▲ 2월 24일 열린 '여중생 촛불시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