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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위법 해석을 둘러싼 '솔로몬의 선택'

[클릭! 인권정보자료] 단행본 『법령해석질의회신집』

발행처: 국가인권위원회(법무담당관실)/ 발행일: 2005년 5월/ 371쪽

솔로몬의 선택! 일리있는 양쪽의 주장이 상충하는 애매한 상황을 설정하고, 4명의 변호사, 즉 솔로몬들이 어떤 법률적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에스비에스의 법률오락 프로그램. 우리가 '솔로몬의 선택'을 흥미롭게 보는 이유는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설정 그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애매함에 의해 야기된 논리적 답답함이 해소될 때 느끼는 지적 쾌감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해석을 둘러싸고 '솔로몬의 선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행본이 나왔으니,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발행한 『법령해석질의회신집』(아래 해석집)이 그것이다. 해석집은 2002년 4월부터 3년간 인권위의 실제 업무처리 과정에서 애매한 법 조항들에 대해 각 부서가 질의하고 법무담당관실이 회신한 125건의 사례를 모았다.

인권위 곽노현 사무총장은 해석집 서문에서 "위원회 법령에 대한 지속적인 통일적 해석과 적용, 그리고 헌법합치적 해석의 필요성이 더욱 커짐에 따라 해당 부서만이 아니라 전직원이 업무에 참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간의 회신내용을 유형별로 정리하여 한 권의 자료로 펴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해석집이 비단 인권위 직원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에 대해 각하처리가 필요한지? 사립고등학교나 근로복지공단이 인권위의 조사대상 기관에 해당하는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을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로 해석할 수 있는지? 진정이 제기된 후 수사나 재판 등 권리구제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각하사유에 해당하는지? 등은 그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인권단체들 스스로 궁금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권고나 구금·보호시설의 수용자가 법무부장관에게 낸 청원을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절차"로 볼 수 있는지? 구치소에서 외부의사의 치료행위를 '공무'로 볼 수 있는지? 국가기관의 정보비공개처분이 인권위의 조사대상에 해당하는지? 인권위가 진정사건의 처리를 지연한 것에 대해 진정이 제기됐을 때 인권위는 이를 조사해야 하는지? 인권위법상 "병력"의 의미에는 과거 앓았던 질병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질병도 포함되는지? 등의 문제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다.

또한 인권위원장의 하계휴가 및 국외여행시 대통령의 허가가 필요한지? 인권위가 감사원법에 의한 직무감찰 대상인지? 구금시설내 수용자의 서면진정시 '집필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노숙인 쉼터나 미신고 시설이 인권위의 조사대상인 "다수인 보호시설"에 해당하는지? 출석요구 불응시 진정인에게도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지? 등은 인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권위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사항일 것이다.

다만 해석집에 수록된 질문들은 모두 매우 흥미로운 상황 설정들이지만, 이에 대한 회신의 내용이 '법률의 해석'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해석집의 일러두기에도 밝히고 있듯이, 회신내용은 법무담당관실의 견해일 뿐 대외적으로 인권위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솔로몬의 선택'이 항상 정답이 아니듯이, 회신내용을 인권단체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일례로 해석집은 노숙인 쉼터를 부랑인 복지시설과 구분하고, 인권위법 시행령의 조사대상인 "다수인보호시설"에 부랑인 복지시설만 명시되었기 때문에, 인권위는 노숙인 쉼터를 조사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것이 결론이 법률적 결론일지는 몰라도 인권적 결론일 수는 없는 바, 인권단체라면 부랑인 복지시설을 확대 해석하여 여기에 노숙인 쉼터를 포함시킬 여지가 없는지 등을 적극 문제제기하고, 인권위로 하여금 법무담당관실의 의견과는 달리 '노숙인 쉼터도 인권위의 조사대상에 포함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법무담당관실의 입장과 인권위의 공식 입장이 상반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해석집에서 이에 대한 주석을 별도로 달지 않았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인권위 법무담당관실 윤명석 씨는 "저희(법무담당관실)는 각 부서에서 질의한 것에 대해 회신을 해 줄 뿐이지, 각 회신 내용이 인권위의 공식입장과 상반되는지는 일일이 점검할 수 없다"고 답변했지만, 해석집이 나오는 시점에서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집은 인권위를 활용하고 감시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해석집의 내용이 인권의 시각에 반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를 하나하나 반박해 가는 과정에서 인권적 주장을 보다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이들이 해석집의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인권위는 법령해석 질의회신의 내용을 단행본으로 묶는 것을 넘어 인권위 홈페이지에 적극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이때는 법무담당관실의 입장과 인권위의 공식입장이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주석을 다는 수고로움을 인권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