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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파장파장] 제천영육아원 인권침해 조사하고도 눈감는 인권위

독립적 조사기능과 권고기능에 제동 거는 송광호 의원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권위에 기대했던 역할 중 하나는 구금시설이나 사회복지시설 같은 인권의 사각지대를 조사하고 개선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곳을 인권위의 조사로 가시화하고 더 이상 그곳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인권위가 ‘국가기구’이기에 좀 더 많은 인적 재정적 자원과 공신력을 갖고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탈(脫)시설의 중요성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지금도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계속 되고 있기에 인권위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나 형제복지원 사건에서와 같은 부랑인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문제시설의 인권침해’라는 하나의 사건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권’을 알려주는 지표다. 지표를 드러내야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방향이 보일 테니까. 그래서 싫든 좋든 인권위가 이러한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를 잘 조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인권위가 문제시설의 인권침해에 대해 조사를 잘 하고도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고 있어 답답한 일이 발생했다.

몇 개월 씩 독방에 감금된 아동도 있어

2013년 5월 2일 인권위는 직권조사로 아동시설인 ‘사회복지법인 화이트아동복지회 제천영육아원’(원장 박민옥, 아래 제천영육아원)의 아동학대를 조사하고 인권침해를 시정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이전에 고아원이라 불렸던 보육원에는 가족이 양육할 수 없어 시설에 있거나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아이들이 생활한다. 보통 사람들이 직장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얻기 전까지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도움을 구하는 자원이 가족이라면, 아동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청소년들은 가족이나 친지라는 자원의 부재로 부당한 처우를 받고도 그냥 당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경우에 놓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인권위의 조사와 시정조치가 더욱 절실하다.

제천영육아원에서 2건의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는 2012년 5월 사건을 조사하다가 해당 시설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하였다. 몇 건의 인권침해만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인권침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짚었던 것은 훌륭한 조치였다. 인권위는 2012년 9월부터 8개월간 제천영육아원 시설과 관리감독 기관인 해당 제천시청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시설에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과거에 거주했던 아동 52명, 시설 운영 책임자 및 생활교사 22명, 아동인권 관련 전문가 등 참고인 8명에 대한 면접 등을 실시한 결과, △아동학대나 괴롭힘 △종교의 자유 침해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드러났다. 그리하여 인권위는 검찰총장에게 시설 원장과 교사 1명을 고발했다. 또한 인권위는 △관리 및 지도감독 책임이 있는 해당 지자체 장에게 시설장 교체를 포함한 행정조치를 취할 것 △신체적·정신적 학대 행위와 관련하여 교사 등 6명을 각 징계할 것 등을 권고했다. 아래는 인권위가 낸 자료에 실린 인권침해의 일부이다.


“원장의 경우 직원을 시켜 나무 또는 플라스틱 막대로 체벌하게 하였고, 욕설을 하는 아동에게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거나 그 방법을 교사들에게 소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동들은 최근까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는데, 일부 아동은 밖에서 문을 잠가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으며, 고립 상태가 두려워 자살까지 생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설은 타임아웃방(독방) 운영과 관련한 지침이나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지자체는 단 한 차례도 이곳을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시설에서는 온수 공급이 원활치 않아 아동들이 겨울에도 차가운 물로 씻었으며, 식사시간에 맞춰 귀가하지 못할 경우 밥을 굶긴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2013년 3월 이전까지는 아동들의 생활태도를 등급으로 평가하여 용돈을 삭감하여 일부 아동들이 생필품 구입 등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남자 초등생활반의 경우 베개를 2년간 지급하지 않다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제공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시설아동들 앞으로 적립된 자립지원금을 아동들이 학원비와 같은 곳에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종교의 자유도 없었고 TV 시청도 제한되었으며, 모든 시설에는 인권위에 진정을 할 수 있다는 안내와 진정서가 비치되어야 함에도 제천영육아원에서는 안내문도 고지하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적힌 아동학대의 내용을 일상적으로 당했던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당사자들에게는 보육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과거나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상처로 남을 수 있기에 인권침해 행위와 가해자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일생동안 얼마나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인가. 그럼에도 ‘보육원에서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며 시설의 인권침해를 두둔하는 행위야말로 2차 가해가 아닐까.

 제천영육아원 모습

▲ 제천영육아원 모습


지역 정치인들의 개입, 인권위 결정조차 흔들어

그런데 그러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 제천지역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이 7월 4일 지역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해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굳이 따를 필요가 있냐며, 공식적으로 인권위 조사결과를 부정하였다. 심지어 송 의원은 “지금까지 열 가지 일을 했는데 아홉 가지는 잘 했고 한 가지 일을 잘못했다고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아홉 가지 잘 한 것을 덮어 두고 잘못한 거만 부각되고 그 사항을 소상히 나한테 와서 보고하라고” 발언하였다. 마치 인권침해 가해자가 사회적 기여를 하면 덮어도 된다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 제천영육아원을 만든 사람은 제인 화이트 여사로 1963년부터 아동복지활동을 한 점 때문에 공경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제천영육아원에서 존재한 인권침해사실을 부인하는데 동원될 수는 없다. 인권침해사건에서 인권침해 가해자의 사회적 공로 여부 및 정도에 따라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것이 달라질 수 없는 일이다.

현병철의 권력 눈치 보기, 아동시설에까지 영향 미쳐

또한 송광호 의원이 “소상히 나한테 와서 보고하라”고 발언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7월 3일 직접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원이 인권위의 업무가 제대로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변명하더라고 그것은 문서로 처리되어야 하며, 국회의원이 인권위원장에서 직접 전화를 거는 압력행사여서는 안 된다. 그러할 경우 이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사안이 인권위원장이 인권침해사안을 묵인하는 등 인권위의 기능을 제대로 못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권위의 독립적인 조사와 권고기능을 훼손하는 일이다.

만약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를 조사하는 중에 지역 국회의원이 인권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해보라.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결정을 이행할 수 있겠는가? 531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형제복지원에서도 인권침해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 1987년 당시, 지역 실세가 검찰에 전화를 걸어 박인근 원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두둔해줬던 경험이 있다. 결국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광범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박인근은 2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을 뿐이다. 역사적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지역정치인의 압력은 시설에서의 인권침해가 지속되게 하는 또 다른 힘의 축이다.

그런데도 현병철 씨는 전화가 걸려오자 인권위 독립성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담당 조사관에게 송광호 의원실에 가서 해명할 것을 지시했다. 해당 사건 담당 조사관이 이는 문제가 있다며 거부하자 조사과장을 바로 다음날 송광호 의원실에 보내 해명을 했다. (절차에 맞게 조사한 사건에 대해 사실 의원실에서 궁금하다면 의원실에서 인권위로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게 맞다. 인권위 직원이 의원실가서 보고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권위가 실세 정치인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다.) 이는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경찰 등 행정부 등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만이 아니라 시설에서의 인권침해에 있어서도 실세(권력자)의 눈치를 본다는 현실과 그에 따라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인권위 공동행동과 시설인권연대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인권위와 송광호 의원실에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인권침해 두둔 사실에 대해 묻는 질의서를 7월 16일 보냈다. 인권위는 5일 만에 ‘일상적인 업무보고’였다고 거짓 섞인 형식적인 답변만을 했고, 송광호 의원실은 몇 주가 지나도록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 아직 제천영육아원에서의 인권침해는 현재 진행형인데도 인권위는 조사결과조차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명현 제천시장이나 제천 국회의원 등 실세 정치인이 시설폐쇄에 대한 지역 사회복지전문가들의 결정을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위는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못하다. 제천시는 시설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는 논리로 아이들을 인권침해 시설을 그대로 두려고 하고 있다. 시설이 폐쇄되면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게 될 수 있다고 겁을 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설에서 나온 어린이·청소년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인지를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인권위가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함께 정책마련에 노력해야 맞다.

중단되지 않는 제천영육아원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

그래서인지 최근 제천영육아원은 아동학대를 반성하고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 조사에 응했던 사람들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하고 있다. 조사에 응했던 아이들과 인권위 조사에 함께 했던 직원들에게 징계가 내려지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징계는 다른 사유로 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업무상 비밀 누설 등으로 행정직원 1명을 해고했고 생활지도교사 2명에게 정직 6개월과 1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지만 인권위는 두 손을 놓고 있다.

제천영육아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기준은 헌법과 아동복지법, 한국이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기본적인 국제인권기준이었지만 지역 정치 실세의 입김 때문에 통째로 부인당하고 있다. 아이들의 삶은 고려되고 있지 않다. 행정부만 아니라 입법부라는 권력도 눈치 보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같은 ‘권력형 위원장’의 자진 사퇴가 이뤄지고 송광호 의원 같은 정치인이 인권위의 기능을 흔드는 일이 없으려면, 인권위의 인적 청산과 법 개정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