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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위, '과자로 만든 집'이 될 것인가

KT 노동자들 진정에 기각·각하로 외면

케이티(KT)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진정을 국가인권위(아래 인권위)가 기각·각하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KT 노동자들과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004년 10월, KT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겪었던 발령, 기업카드 미지급, 감시 등이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지난 5월 16일 현행 인권위법에서 규정하는 조사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하고 발령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행위라 볼 수 없다며 기각하여 진정인들이 7월 1일 항의면담을 진행했다.


민영화에서 시작된 인권침해

KT 노동자들의 인권침해는 한국통신 민영화와 구조조정 과정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특히, 2003년 12월 사측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노골적으로 분류하여 업무분류표에 편재되어 있지도 않은 유령조직인 '상품판매전담팀(상판팀)'을 만들었고 "상판팀 직원에 대한 관리의 최종목표는 퇴출"이라는 회사측 자료가 발각되어 강력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상판팀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영업팀에게 제공되는 기업카드나 판촉상품을 지급받지 못했고 부당한 발령이 잦거나 각종 교육 및 회의 참석이 불허되는 등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이에 더해 미행, 사진촬영과 같은 감시도 이루어져 상판팀 노동자들 중 일부는 적응장애와 불안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질환으로 산재요양 판정을 받기도 했다.


맥락을 보지 않는 인권위

인권위는 진정 내용 중의 하나인 2003년 12월 1일 발령부분에 대해 거리상 "근로자가 수인할 수 있는 범위내 처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진정인측은 당시 발령이 "일반적인 전보가 아니라 12월 1일 실시된 전보조치로서 상품판매팀으로의 발령이라는 것이 쟁점"이며 인권위가 '1년 이상 경과'했다는 법의 규정을 들어 "잦은 발령이 문제라는 사실은 보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ㄱ씨는 2001년 7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울산, 안성, 수원, 대전, 여주, 이천으로 빈번하게 발령배치됨으로써 입사한 이래 24년간 근무했던 부산에서 계속 멀어져갔다. 그러나 인권위의 결정문에는 ㄱ씨의 2003년 12월 발령에 대한 판단과 결론이 아예 누락되어 있다. 또한 인권위는 ㄴ씨의 진정사실에 대해서도, 연고지인 청주에서 음성, 제천, 충주로 이어진 발령경과를 보지 않고 12월 발령의 전후 근무지인 제천과 충주의 거리만 계산하여 '1시간 소요되는 거리로 근로자가 수인할 수 있는 범위'라고 판단했다.

진정인측은 "중요한 진정사실을 누락시키는 등 인권위가 이번 진정의 핵심내용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탓에 결과적으로 진정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항의면담의 배경을 설명했다. 면담에 참여한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김종섭 활동가는 "무엇보다도 '인권의 눈'으로 판단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분노했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

인권위법 제30조 제2항 제1호는 "법인, 단체 또는 사인"이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 및 임금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에 있어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조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기업카드 미지급, 감시, 반감금생활부분, 정신적 고통부분 등이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평화인권연대 손상열 활동가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영업팀과는 다른 상품판매팀으로 구별해 배제한 후 각종 부당한 대우를 한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국가인권위가 차별에 대해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권위가 '차별'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을 고의로 회피한 것 아니냐는 혐의를 두기도 했다.


인권침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인권위 돼야

KT가 그렇듯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휩쓸고 간 자리는 인권의 무덤이 되고 있다. 특히,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인권침해는 갈수록 교묘하고 악랄해지는데도 권리를 호소할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KT 노동자 김미영씨는 "노동위원회를 수도 없이 다녀오고 수도 없이 깨지면서 인권위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오히려 노동위원회로 가야할 사안이라며 내치는 상임위원의 모습을 보니 자본의 벽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동시에 "인권위가 왜 만들어진 거냐" 물으며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면 인권위는 그 곳으로 달려가 인권을 옹호하고 그런 부분을 더욱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씨는 "인권위에 대해 끝까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KT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싸우기 위해서라도 당장 발딛고 설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자로 만든 집, 아늑해보이지만 막상 비가 오면 녹아버려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집이 될 것인지, 비바람을 막아줄 든든한 휴식처가 될 것인지는 인권위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