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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신'마저 짓밟는 '신종노동탄압'

하이텍에서는 무슨 일 있었나?

"신문지를 왜 붙이냐고 시비를 거는데 너무 분통해서 손, 발이 저리기 시작한 거야. 주위에서는 팔이 뒤틀리는 것 같다며 놀라서들 약을 찾고 진정시키고 분주한데 그 와중에 관리자가 뭐라 그랬는지 알아? '기자분은 나가시라'고. 이러니, 참…"

하이텍 노동조합의 이용신 조직부장

▲ 하이텍 노동조합의 이용신 조직부장



하이텍알씨디코리아(아래 하이텍) 노동조합의 이용신 조직부장. 벌써 입사한 지 18년째인 그는 사측의 행태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관리자가 앞에 있는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의 감시와 차별로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하이텍 조합원들은 지난 5월 10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불승인 판정을 내렸고 조합원들은 6월 9일부터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 산재승인쟁취를 위한 일일주점'이 열린 7월 8일,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하이텍지회 김혜진 지회장과 이 조직부장을 만났다.


"빨리 약 먹어"

"우리들끼리는 얘기하다가 꼬이면 '야, 너 약 먹을 시간 지났다. 빨리 약 먹어' 이런 농담해요" 하이텍 조합원들의 농담 아닌 농담에는 하이텍 노동탄압의 진실이 들어있다. 이미 2003년 7월경 하이텍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통한 노동자 감시는 방송에 수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지금은 사측에서 철거했다고 해요. 하지만 늘 불안해요. 아직도 조합원들이랑 얘기할 때는 나도 모르게 입모양으로 속삭이거나 쪽지에다 쓰거나 그래요. 게다가 조합사무실 앞이나 식당 같은 데는 아직도 버젓이 CCTV가 돌아가고 있어요. 나는 누가 사진만 찍는 거 봐도 사진기를 부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 이 조직부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농성장 근처로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는 말을 뚝 멈춘 채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CCTV는 현재진행형

▲ CCTV는 현재진행형



"지금 남아있는 CCTV 중에 노조사무실 앞에 붙어 있는 것과 노조에서 주로 집회하는 근처에 붙어 있는 것 두 개, 유독 그것만 회전이 돼요" 하이텍 CCTV의 목적이 사측이 말하듯 방범용인지, 노조가 주장하듯 조합원 감시를 위한 것인지 분명해진다. "노조 사무실 밖에 고양이가 죽어 있던 적이 있어요. 나가는 길에 둘러봤는데 그 고양이가 보이지를 않더라구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차를 탔는데, 으악, 그 고양이가 차 유리창 앞에 철썩 붙어있는 거예요" 깜짝 놀란 지회장이 사측에 "CCTV에 녹화되었을 테니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을 때 회사는 "그건 사설경비업체가 운영하는 거라 우리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재관련 현장조사 중 모니터실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발각되었다. 회사는 CCTV가 방범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김 지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사업장의 90%가 감시 시스템 도입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전자 감시와 통제가 확대되고 있다. 2003년 6월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 전국의 사업장을 무작위 추출하여 조사한 결과는 놀랄 만하다. 이미 90%의 사업장이 감시 시스템을 설치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CCTV는 기록비율이 78%로 가장 높은 감시 시스템이었으며 1개월 이상 기록이 보관되는 비율도 58.7%에 달했다. 사측에서 응답한 감시 시스템 도입의 근거는 '문제 발생시 객관적 근거마련, 생산과정 모니터링 경영혁신, 노동자 기물파손 절도방지 등'이며 심지어 '노동자 건강안전'을 위해 도입했다고도 응답했다. 그러나 동시에 실시된 노동자 인식 조사에서는 25.7%가 '건강악화'를 감시 시스템 도입 후의 부정적 변화로 들었다.


"물도 안 주고 밥도 안 준" 노동탄압의 역사

하이텍의 역사는 감시 시스템 도입의 본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98년부터 노조탄압이 본격화됐어요. 그때 경제위기다 뭐다 했지만 하이텍은 98% 이상을 수출하는 기업이라 환차익을 보던 중인데 갑자기 30%나 되는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이 들어온 거야. 아예 고용 관련한 개악안을 임단협에 내놓으면서 정리해고를 강요하더라구요" 김 지회장은 정리해고에 맞선 당시의 투쟁이 힘겨웠지만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 그대로 일하는데 조합원에 대해서만 작업장에 못 들어가게 한" 2002년 6월 28일 직장폐쇄는 조합원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의 시작이었다. "작업장만 그런 게 아냐. 물도 안 주고 밥도 안 주고 화장실도 못 쓰게 했어. 화장실이 없어서 화단에다가 우산으로 가려서 볼 일 보고 그랬어" 이 조직부장은 지금도 그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방금도 내가 20리터짜리 물통에 물 떠왔잖아. 나는 물통에 물이 안 채워져있으면 불안해서 앉아있지를 못해. 직장폐쇄할 때 식당에서도 조합원들은 밥을 제대로 안 줘서 밥을 타올 때면 듬뿍듬뿍 떠오는 게 습관이 됐어. 얼마전에 연대한다고 다른 사업장 갔다가 거기 식당에서 밥을 푸는데 다른 조합원이 그랬어. '언니, 여기는 우리 회사 아니거든?'"

▲ "언니, 여기는 우리 회사 아니거든?"



직장폐쇄 뒤이은 CCTV

노동조합은 당시 직장폐쇄가 현행법에서 인정되지 않는 '공격적 직장폐쇄'였기 때문에 노동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2002년 11월경 갑작스럽게 회사가 직장폐쇄를 풀더니 약속이나 한 듯 검찰에서 '혐의없음'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그 와중에 노사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이후 임금인상에서의 조합원과 비조합원 차별, 출퇴근과 외출 관리에서의 차별 등이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은 직장폐쇄 이전의 업무와 상관없이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배치전환되었다. 2주 후 그 생산라인의 앞뒤로 CCTV가 들어왔고 신문지는 감시를 막기 위해 붙인, 조합원들의 고육지책이었다. "라인의 가운데를 신문지로 막아요. CCTV를 막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끼리도 서로 못 봐요. 얘기하기도 힘들고. 그게 진짜 속상해요. 감시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조합원들끼리 얼굴 맞대는 것도 못하게 되니. 하지만 어떡해? 마음이 조마조마한 걸"


부당노동행위 "맘놓고 하라는 얘기"

"노동부로, 노동위로 고소장이다, 진정서다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부당해고에 대해서는 2003년에 중노위로부터 복직판정을 받았어요. 그것 말고는 없어요. 조사한다, 근로감독한다 하면서 작업장 와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간 후로는 통 소식이 없어요"

2004년 국가인권위 연구용역보고서인 '노동권 기초현황조사'를 보면, "1997년말의 금융위기 이후 부당노동행위 신청건수가 대폭적으로 증가"했으나 "부당노동행위 인정비율은 대폭적으로 감소"했다. 97년과 02년을 비교해보면 인정비율이 늘기는 하였으나 신청건수가 498건에서 1355건으로 2.7배 증가한 것에 비해, 인정비율은 10.5%에서 17.0%로 1.6배 증가에 그쳤다. 사유별로 보면 '조합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이 90.8%로 절대적으로 많다.

김 지회장은 숱한 노동탄압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지 않는 현재의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고소해도 노동부에서 부당노동행위 아니라고 하면 회사가 면죄부를 받는 거예요. 면죄부만 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맘놓고 하라는 얘기인 셈이죠"

하이텍 농성장에 붙어있는 선전물

▲ 하이텍 농성장에 붙어있는 선전물



'신종노동탄압대응수단'은 어디에

현재 하이텍은 조합원들의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계산해 임금을 공제한다. 쟁의행위에 참가한 시간이라는 명목이지만 임금공제표에는 7분, 12분짜리들도 눈에 띈다. "회사에서 그러더라구요. 작업장을 나가는 거면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5분 넘으면 공제할 꺼라고" 게다가 회사는 조합원 8명에 각 2억원씩 손해배상소송도 걸어놓은 상태다.

'고전적인' 노동탄압수단인 무노동무임금에, 어느새 사측의 일상적인 노동탄압수단으로 자리잡은 '손해배상·가압류', '떠오르는' 노동탄압수단인 CCTV까지. '신종노동탄압'이라는 말조차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자의 저항수단은커녕 그나마 있는 구제절차는 점점더 까다로워져가고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은 '정신'마저 짓밟히고 있다.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농성장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때면 기분이 좋아요" 이 조직부장이 말하듯, 연대투쟁이 새로운 저항의 시작일지도.

하이텍의 임금공제표

▲ 하이텍의 임금공제표



김혜진 지회장

▲ 김혜진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