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장여경의 인권이야기

첨단, 편리 그리고 감시

지금 대부분의 서울 시내버스에 CCTV가 달리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지난 96년 10월, 석달 전의 버스요금 인상이 실은 2백38억여 원의 운송 수입금을 빼돌려 회사를 적자 상태로 만든 업주들의 ‘조작극’에 의한 것이었음이 검찰에 적발되었다. 그런데도 다음해 3월 버스 요금이 다시 인상될 조짐을 보이자 버스 수익 투명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때 “버스 수익이 불투명한 것은 운전기사들의 삥땅 때문”이라는 업주의 주장이 부각되었고, 애초에는 버스업주들의 비리 때문에 시작된 ‘시내버스개선종합대책’은 이렇게 해서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한 CCTV를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겨놓고 마무리되었다.

서울시는 업주들에게 거액의 CCTV 설치비를 지원했고 서울 시내버스에 일제히 CCTV가 달리게 되었다. CCTV는 이제 더 이상 버스 수익 투명화와는 관계가 없다. 몇 년 새 널리 보급된 교통 카드가 요금을 '투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 명분을 다했음에도 CCTV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업주들이 버스 CCTV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전담 직원을 채용하고,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CCTV를 백배 활용한다.

어떤 버스회사는 “물증을 잡았다”며 노동조합 활동가들만을 해고했고 또 다른 회사는 관례대로 커피값을 뽑아간 노동자에게 “200원 삥땅쳤다”는 이유를 들어 퇴사를 종용했다. 때때로 그들은 CCTV의 ‘공익적 목적’을 강조하기도 한다. 9시 뉴스에서는 버스 CCTV에 잡힌 소매치기 장면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시청자는 소매치기의 행위에 분노하면서 CCTV가 우리에게 주는 기능적 효용에 안도한다.

우리 눈앞에서 늘 CCTV가 노동자를, 승객을, 일거수일투족을, 대화내용을 감시하고 녹화하는데 어째서 이 문제는 중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감시기술이 절대 노골적인 ‘감시’의 이름으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아니, 감시기술은 늘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등장한다. 때로는 첨단이라는 이름을, 때로는 편리함을, 때로는 공익적인 명분을 가지고 있다. 버스 CCTV가 그랬고, 전자주민카드가 그랬고, 전자건강카드가 그렇다.

그러나 감시의 본질은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하게 불평등한 권력관계다. 첨단 감시 기술일수록 ‘기술의 중립성’ 속에 권력관계를 은폐한다. 그것을 통찰할 때만이 우리는 소중한 인권을 지켜낼 수 있다.

7월 1일부터는 또 다른 기술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한다. 인터넷내용등급제라는 차단 기술과 그 차단 기술의 뒤에서 휘둘리는 감시와 검열 권력이 청소년을 보호할 것이라 믿는다면 그처럼 순진한 생각은 없을 것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