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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의 인권이야기] 감시와 안전, 누구를 위한 것인가.

착복의 증거? 정보인권 침해의 증거겠지.

올해 1월, 호남고속이라는 버스회사에서 시외버스를 운전해온 전북지역의 두 노동자가 승객의 버스비를 착복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되었다. 17년간 또는 8년간 별 탈 없이 운행을 해오던 이들이 착복했다고 알려진 금액은 각각 2400원과 800원. 10여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성실하게 일해오던 이들이 국수 한 그릇의 돈도 안 되는 버스비를 착복하여 해고가 되었다는 것 때문인지 지역 언론은 물론 공중파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돈을 착복했다는 증거는 시외버스 내부의 CCTV 영상이었다. 그러나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해당 영상만으로 돈을 착복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한다. 성실하게 근무해온 이들이 운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바삐 움직이다 보니 실수로 운임 중 일부를 빠트렸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운임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감시하라고 설치한 CCTV가 아니었다.

현재 대부분 버스 내 설치된 CCTV는 버스기사와 승객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민원·안전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에 증거 수집을 하는 게 그 목적이다. 본래 목적이 아닌 목적으로 촬영된 CCTV 영상을 사용한 것은 명백하게 정보인권 침해며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일이다. 하지만 회사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징계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해고된 호남고속 버스노동자만 2010년 이후 벌써 4명이다. 노선도 다르고 착복했다고 하는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해고자 모두 기존 노조의 폐해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조 소속의 버스노동자들만 CCTV를 이용해 표적 탄압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전북 지역 외에도 회사가 특정 버스노동자들의 운행모습을 CCTV를 통해 일일이 기록하고 이를 근거로 징계와 사유서 제출을 요구하는 일들은 전국적으로 있었다.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CCTV가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노조활동을 탄압하는데 사용된 것은 버스업종만의 일은 아니다. 작년에만도 유성기업 등에서도 작업장 안전과 시설보호 목적으로 설치한 CCTV가 노동조합의 간부나 조합원을 징계하고 감시하는 데 사용되어 노동자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불법적으로 CCTV를 이용하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유성기업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경찰이 관계기관 등을 통해 고속도로 교통감시 카메라를 임의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안전을 위해 혹은 사람을 보호한다며 설치한 CCTV가 조용하게 하지만 쉬지 않고 집요하게 사람들을 지켜보는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뿐더러 이제 투쟁의 현장이면 어디든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돌이켜보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여 철저한 감시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승객이 난동을 부릴지 모르는 버스에 혹은 위험한 곳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결과 정부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2012년까지 설치된 CCTV는 360만대를 넘어섰다. 2013년 400만대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수치라면 세계에서 화장실에도 CCTV가 설치될 정도로 인구 대비 CCTV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인 영국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안전 공화국’이라 할 말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부르짖는 것처럼 정말 안전한 사회에 있는 것일까. 안전하다면 누구를 위한 안전일까.

남은 고민들.

2010년 이후 수차례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호남고속을 비롯해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는 버스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주시가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전주시청 앞에 농성장을 펼쳤다. 농성장을 지지 방문하러 갔던 날 먼저 살폈던 것은 시청 위에 달려있던 CCTV가 농성장을 향해있지 않은 가였다. 과거 전주시는 시내 교통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시청 위 CCTV를 집회 참가중인 노동자들을 향해 돌렸다가 큰 항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해고된 호남고속 노동자들이 다시 생각났다. 노동자들이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되어 복직이 된다하더라 그들의 머리위의 CCTV는 여전히 남아있다. 합리적인 수납 체계는 만들지 않은 채 노동자들이 현금을 잘못 수령하는 지를 감시하는 체계는 계속될 것이다.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지역에서 버스노동자 해고 사건을 맡고 있는 한 노무사 역시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현금 받을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수십 년 일한 일터에서 몇 천원 때문에 해고될 수 있다’며 노동자들이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고 해고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민어린 조언이지만 동시에 묘하게 찜찜함이 남았다. 감시시스템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의도를 용인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장에 CCTV를 설치와 운영이 불법이라 결정 되더라도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선 ‘너는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서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위축시키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포기하고 반납했던 자유를 되찾는 것이 지루하고 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속상하지만 일상과 일터를 감시받지 않기 위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임

채민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