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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하이텍 자본 손 들어준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법 개정 시급

하이텍알씨디코리아(아래 하이텍) 노동조합이 산재승인여부 '재심의'를 요구하며 지난 6월 9일부터 근로복지공단 본사(아래 공단) 앞에서 농성 중이다. 하이텍 여성 조합원 13명은 4년 동안 계속된 회사 쪽의 고소고발 남발, 불법적 직장폐쇄, 부당 배치전환, 부당 해고 등 노조 탄압으로 인한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공단은 이들의 산재신청에 대해 지난 5월 28일 전원 불승인 결정을 내려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이텍 농성장에 걸린 현수막

▲ 하이텍 농성장에 걸린 현수막



전국 노동안전보건단체 회원들은 지난 7월 4일부터 공단 앞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요양신청을 했던 2003년 청구성심병원 조합원과 2005년 성람재단 조합원들처럼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불승인 비율은 높아져만 가기 때문. 하이텍 공대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1~ 6/30 사이에 접수된 방문상담 26건 중 불승인 또는 부분승인 된 경우는 4건(15%)에 불과했지만, 올해 5/10~6/3 사이에 접수된 방문상담 27건 중 불승인 또는 부분승인 된 경우는 16건(60%)으로 급증했다.


산재불승인 비율의 상승 원인은 공단

지난 6월 16일 산재불승인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산재노동자인 김혜진 하이텍지회 지회장 등 하이텍 산재불승인 관련 대표들이 근로복지공단 본부 방용석 이사장을 직접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으나, 방 이사장은 "민주노총이 다 와도 안 만나면 안 만난다", "내가 복지공단을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이 건은 처리 못한다"고 폭언한 후 자리를 피한 것. 그 과정에서 산재환자인 하이텍 지회장에게 십여명의 공단 직원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해 산재에 대한 공단 측의 인식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김정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은 "공단이 1년에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으로 받는 3∼4조원은 노동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재해를 막아야할 의무가 있는 공단이 심사권을 이용해 자본의 손을 들어줬다"고 공단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담이 산재보험을 신청한 노동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

근로복지공단 본사

▲ 근로복지공단 본사



공단 산재승인여부 결정 과정의 정당성 상실

지난 7월 7일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 등의 주최로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하여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과정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아래 공청회)'가 열리는 등 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가진 문제에 대한 지적들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하이텍 조합원 산재 불승인은 공단에 의한 산재승인여부 결정 과정의 정당성에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지난해 11월 개정된 공단의 '요양업무처리규정'은 기존에 신경정신과 전문의만 포함됐던 '정신과적 질환'의 자문의사협의회에 "신경정신과 또는 정신과 전문의 3인 이상"을 참여하도록 해 심의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하지만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한 이 개정안은 산재노동자에게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텍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5월 26일 자문의사협의회 직후, "자문의 결과를 공개해 함께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보충할 기회를 달라"는 조합원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김용주 관악공단지사장은 "내가 죽는 일이 있어도 그 결과는 공개할 수 없다"며 결과 공개를 거부했다.

또 하이텍 조합원 산재신청에 대한 심사과정에서 공단이 자문의사들에게 제출한 참고 자료를 보면, 제3자인 회사 측 관계자 17명에 대한 조사를 벌여 조합원과 회사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산재신청 과정에서 동등한 자료로 채택해, 회사 측 주장이 조합원 측 주장에 비해 주요하게 나타나 있고 조합원 측 주장과 관련한 내용이 일부 누락되거나 변경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6월 2일 하이텍 산재불승인 관련 공단 본사 항의 면담에서 공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에 '오타'라고 변명한 바 있다. 하이텍 조합원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공단은 '불승인'으로 유도하는 조사과정을 밟아왔다는 것.

공청회 자료의 '작업관련성 질병 변화추이'에 따르면 건강보험 비중에 비해 과로스트레스성질환 등 작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미약하다. 한 예로 2002년 근골격계질환 건강보험입원 사례는 11,625명인 반면 산재보험 사례는 1,134명이다. 또 2002년 접촉피부염 건강보험입원 사례는 151명인 반면 산재보험 사례는 5명이다. 결과적으로 극히 일부분만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고있다는 것. 일반적인 만성질환의 증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 증가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극히 일부에 그치는 이유는 현 산재보험제도가 산재노동자의 수급권을 극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청구 절차와 조직체계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단, 산재노동자를 위한 기구가 되어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근골격계질환 등과 같은 사고재해가 명확하지 않은 직업성 질환들은 의학적 인과관계가 다원적이고 불분명하다"며 산재승인과정에서 공단이 엄밀한 잣대로 인과관계를 조사하는 것과 관련해 "공단은 민사상의 보상 등을 위한 재판기관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회보장시스템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산재가 아니라는 반증이 없다면 승인해야 한다는 것.

공청회에서는 현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과 개혁 방향으로 '선보장 후평가'가 제기되었다.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산재노동자가 입증하기 어렵고, 더욱이 질병의 원인이 복합적일 경우 입증책임을 갖고 있는 재해근로자에게는 막대한 부담이 된다. 현재 노동자가 당한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여지가 많은 경우에도 공단의 승인이 있기 전까지는 산재급여를 지급 받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가 비용의 부족 또는 사업주의 압력 등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어 개정안에서는 의사 등이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면 그 즉시 '요양급여'를 실시하게 했다. 산재노동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산재보험의 존립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

'산업재해로 인해 고통받는 근로자들의 요양에서부터 보상, 재활 및 사회복귀까지 근로자의 옆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만족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근로복지공단은 하이텍 조합원 산재여부 '재심의'를 통해서만 '근로살인공단'이란 하이텍 노동자들의 비판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