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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권 받을 수 있다면 임대주택 들어가고 싶어요”

세입자 권리 무시하고 조합 이익 편승하는 성북구청

지난 4월 12일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아래 공토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이 기존의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택일에서 동시 지급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에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9월 29일 성북지역단체들이 진행한 재개발 지역 현장 상담에서 세입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조합에서는 세입자 대책 변경 내용을 무시한 채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나아가 구청에서 이를 묵인하고 조합에게 사업 시행 인가를 내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지난 9월 29일 성북구 종암동에서 열린 현장상담

▲ 지난 9월 29일 성북구 종암동에서 열린 현장상담



“택일해야 한다고 말해주던데...”

종암 6구역은 2005년 9월 8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2007년 7월 25일 사업 시행 인가를 받았다. 세입자에 대한 보상 규정이 개정된 4월 12일 이후에 사업 시행 인가가 이루어졌기에 이 구역의 세입자들은 구역 지정일 3개월 전부터 거주했다는 조건을 충족하면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지급받을 수 있다.

2000년부터 종암 6구역에서 산 김순옥 씨(가명), 현재 두 명의 아들과 언니 이렇게 4명이서 함께 살고 있다. 보증부월세로 살고 있는데 한동안 35만원의 월세를 내지 못해 지금은 500만원이었던 보증금을 거의 까먹은 상태. 일을 하게 되면서 현재는 월세를 정기적으로 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1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입주권을 포기했죠. 주거이전비랑 같이 지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어요. 조합에서도, 구청에서도 둘 중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던데...”

주거이전비를 받고 나가서 새롭게 거주할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막막했었다고. 세입자 대책이 바뀌었고 종암 6구역은 변경된 내용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그녀의 표정이 환해진다.

“꼭 입주권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하나, 집은 구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많았었거든요. 임대아파트 들어가서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나는 임대아파트 들어갈 수 있으려나?" 개정된 내용의 세입자대책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는 매우 높았다.



세입자 대책,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택일에서 동시지급으로

그동안 입주권을 선택한 세입자들은 주거이전비 지급에서 제외되었다.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중에서 택일해야 했던 것. 안정적인 거주를 원해서 임대주택 입주권을 선택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세입자들의 현실이었다.

임대주택 보증금은 대략 1000~2500만원 사이다. 지속적인 공급 비용의 증가로 최근에 지어진 임대주택의 보증금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임대료와 관리비는 평균적으로 14만원과 8만원 정도. 임대주택 거주 가구의 30% 이상이 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 부담(임대료+관리비)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결과가 보여주듯,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의 과중함과 보증금 마련의 어려움으로 대부분이 입주권을 포기하고 주거이전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살던 곳의 보증금을 빼서 주거이전비로 지급된 돈(4인 가구의 경우 약 900만원, 2006년 4/4분기 기준)을 합해도 이미 주변 시세는 오를 대로 오른 상황. 결국 세입자들은 개발 지역에서 밀려나 형편에 맞는 거주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이번 개정으로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이 세입자들에게 훨씬 넓어지게 되었다.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동시 지급받게 되면서 주거이전비를 보증금으로 돌려 입주에 필요한 비용 마련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고 나아가 이렇게 입주한 임대주택이 길게는 50년까지 임대가 보장되어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입자들의 권리를 확보하기는커녕 축소하고자 하는 지자체

주거에 대한 부담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지만 이번 개정으로 일부나마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개발의 명분으로 주거 생활의 질 향상이 내세워져 왔지만, 세입자들은 ‘소유하지 못한 죄’로 그 과정과 결과에서 늘 배제되어 왔다. 개발로 발생된 이익은 고스란히 소유주와 건설 기업 수중에 들어갔던 것.

그러나 여전히 세입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사례를 종암 6구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조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공적 책임이 있는 구청에서 이를 무시한 것은 곧 세입자들의 권리를 외면, 나아가 조합의 이익에 편승한 것이다.

성북구청에 왜 세입자 대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 시행 인가를 내주었는지 묻자, 도시개발과 직원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개정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전처럼 택일 방식으로 사업 시행 계획을 인가했다는 것. 오히려 서울시와 건교부에 공토법 시행규칙 재개정을 건의한 상태라고.

한편 건교부는 이번 세입자 대책 개정과 관련, 조합과 지자체에서 재개정 건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조합에서 ‘이건 되지 않는 장사를 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세입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등의 문제제기가 많이 있다는 것. 건교부는 이러한 입장을 고려하여 시행규칙 재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거취약계층에게 적절한 주거환경을 마련해주는 것, 그래서 전반적인 주거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개발의 명분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지자체와 건교부에는 없어 보인다. 세입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계속 묵인할 것인지 이번 세입자 대책 개정안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