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용산특집] 살아남기 위해 죽어야 하는 역설을 끝내야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사건의 발생 원인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사건으로 사랑방은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어떤 대응 활동을 하는지는 활동 보고에서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여기서는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사건 직후 [인권오름]에 실렸던 기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싣습니다.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하다. 개발 이후에 세 들어 살 수 있는 곳, 개발하는 동안 머물 수 있는 곳. 그러나 용산구청이나 조합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남아있는 주민들을 내몰았으며 개발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시공사(삼성물산, 대림, 포스코)는 언제나 그렇듯 멀찌감치 수수방관이었다.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용산4구역 철대위 회원들은 결국 신용산역 인근 상가 건물 옥상에서 농성에 돌입하게 됐다. 첫 농성은 시작하자마자 경찰의 진압에 직면하게 되고 겨우 하루를 넘긴 시간에 완전 진압 당했다.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지금까지 사망이 확인된 철거민은 모두 다섯 명이다. 철거민에 대한 경찰 진압 과정에서 다섯 명이 동시에 사망한(경찰 한 명을 포함하면 모두 여섯 명의 사망자 발생) 유례없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짚어보자.

첫째, 경찰은 처음부터 설득이나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경찰은 점거에 들어간 지 단 하루만에 강제진압에 들어갔고, 이는 이들이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들에게 ‘하루종일’ ‘무차별적으로’ 화염병과 골프공을 투척하는 등 도심 테러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며,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선정적인’ 자료들은 대부분 20일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된 이후의 자료들이다. 무엇보다 서울경찰청이 경찰특공대 투입 등 강제 진압을 결정한 시점이 점거 농성이 시작된 지 단 세시간 반 만이었다는 점은 경찰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둘째, 경찰은 사전에 대형 화재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과격한 진압 작전을 강행했다. 언론 보도에서 확인되듯 경찰은 망루 내에 인화 물질이 상당량 있음을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내부 안전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곧바로 강제 진압 작전을 시작하였다. 강제 진압 과정에서도 실제로 망루 내에선 화재가 한차례 발생했다가 진화되는 등 화재 위험성이 현실화 되었지만, 경찰 현장 지휘부는 계속 과격한 작전을 강행하였다. 이런 무모함이 결국 소중한 목숨들을 앗아가는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셋째, 경찰은 현장에서 생존자에 대한 구호 의무를 무시함으로서 인명 피해를 더욱 키웠다. 화염에 휩싸인 망루에서 탈출한 생존자는 최소 10명에 달했으나 경찰은 이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외면하였고, 결국 그 중 한 명이 불탄 시신으로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에어매트와 그물망, 사다리차 등은 설치되지 않았고 지면으로 추락하여 크게 다치는 이들이 생겼다. 지면에 추락한 부상자가 경찰에게 걷어 채이며 호송차량에 실린 채 방치된 사례마저 있다. 이러한 점들은 경찰이 농성자들의 안전은 완벽히 무시한 채 신속한 진압에만 열을 올렸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경찰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현장 지휘관들과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평소에 틈만 나면 엄정한 질서를 강조해 온 어청수 (전) 경찰청장,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 및 이명박 대통령 역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점들도 짚어져야 한다.

넷째, 경찰특공대의 무분별한 투입 관행을 다시 살펴야 한다. 경찰특공대는 그동안 시위 현장이나 노동조합 파업, 철거민 농성 등에 대한 진압 활동에 투입되어왔으며, 경찰특공대의 창설 명분인 대테러진압활동을 수행한 적은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특공대의 존재 근거인 대테러대응활동의 필요성 자체가 허구가 아닌지, 실제 목적이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한 무력 확보는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우선은 경찰특공대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대시민 활동에 투입되는 것부터 금지해야 한다.

다섯째, 근본적으로는 경찰이 철거 현장에서 가진 자들의 편을 드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건설 자본에 고용된 철거 깡패들의 폭력에 시달릴 때 경찰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다 절박한 처지에 몰린 철거민들이 농성에 들어가자마자 1400여명의 강제 진압 병력을 투입한 것은 분명 편파적이고 반민중적인 공권력 행사이다. 이렇게 경찰이 가진 자들의 편에서 빼앗긴 자들의 저항을 탄압할 때마다, 경찰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는 것을 경찰은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경찰 폭력뿐만 아니라 철거 현장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살펴야 한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1년 가까이 투쟁해온 이유와 그렇게 투쟁해오는 동안 한 번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개발사업에서 세입자 대책이 매우 부실하기 때문이다. 오랜 철거민투쟁의 역사에 힘입어 세입자에게 임대주택 입주권이 제공되기 시작했지만 자격이 제한적이다. 또한 개발사업 구역의 세입자 가구 수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임대주택만 지어진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용산4구역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추진되는 곳으로 도심 내 상업 지역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상가세입자에게는 3개월 분의 영업손실 보상(이것도 부족하지만) 외에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나 상가세입자들이 존재하는데 상가세입자들이 개발 이후에 또는 개발하는 동안 재정착할 수 있는 계획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결국 개발로 인해 생계를 아예 박탈당하게 된다. 강제퇴거와 관련한 국제기준은 모든 주민이 개발 이후에 더욱 열악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둘째, 세입자가 개발사업의 진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다. 세입자대책이 부실한 이유는 한국의 개발사업 제도가 여전히 세입자를 지역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은 한 지역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입자는 없는 존재가 된다. 소유주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 요구나 퇴거 요청에 세입자는 속수무책이다.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점유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주거권의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점유에 영향을 미치는 개발 사업에 대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협의하거나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용산4구역 세입자들은 조합이나 구청으로부터 아무런 협의 제안을 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퇴거를 요구받았다. 

셋째, 한국의 개발사업은 건설자본이 개입하기가 너무나 쉬운 구조다. 주택 및 토지 소유자들로 구성된 조합은 시공사 선정 권한을 갖는 등 개발의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금조달 과정에서 시공자로부터 차입하거나 시공자의 보증을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개발사업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어 시공자의 영향력이 막대한 구조다. 조합원들조차도 개발 사업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아 개발사업의 막바지로 가서야 개발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건설자본은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이익을 보려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구역 전체를 철거하는 전면 철거방식을 선호하게 되고 용역업체(용산4구역의 경우, 호람건설과 현암건설)를 동원해 주민들에게 폭행과 협박까지 행사하며 퇴거를 종용한다. 철거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 저항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현재의 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담보로 건설자본을 살찌우는 사업일 뿐이다. 이처럼 민간자본 위주로 추진되는 개발사업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순환식 재개발을 원칙으로 하고 공공의 책임 아래 추진되어야 하며 모든 주민의 퇴거가 완료되기 전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금지해야 한다. 건설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공간의 사유화를 심화하는 이명박 정권의 각종 개발정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사건 발생 후 바로 경찰은 화재의 원인이 철거민들의 화염병 투척 때문이라며 확인되지도 않는 사실을 유포하고 사건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찰이 진압을 시도했다는 점 자체이며 세입자의 주거권이 인정되지 않은 채 건설자본의 손아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개발정책 때문이다. 이 사건은 국가와 자본이 민중에게 가하는 폭력을 극적으로 보여줬을 뿐이다. 이미 너무 많이 발생해온 사건이며, 이와 같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똑같은 사건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더 이상 죽어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죽음을 무릅쓴 투쟁의 이유가 되는 이 역설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