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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전자팔찌가 부를 감시 세상

지난 26일 한나라당은 증가하는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전자팔찌(전자위치확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전자팔찌의 기대효과로 성폭력 범죄자가 지속적인 감시를 받게되면 성폭력 범죄율의 감소를 유도할 수 있고, 이들의 사회활동을 제한·감시함으로써 재범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전자팔찌로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대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에서 전자팔찌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석방이나 보호관찰을 부과할 때 그 조건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였으므로, 성폭력 범죄율과 재범이 감소했다는 보고는 검증된 바 없다. 전세계적으로도 성폭력 범죄자의 위치정보를 통해 성범죄 예방을 이루었다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다. 또한 징역을 마친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착용시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명백한 이중처벌이다. 게다가 위치정보도 프라이버시의 중요 영역으로, 전자팔찌를 부착하는 행위는 성폭력 범죄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한나라당이 성폭력 근절의 의지를 정책으로 구현하고 싶다면,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작동되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과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성폭력 신고율이 6%라는 통계에서 보듯이,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은 가시화 되지 않는 영역이다. 성폭력 가해자 중 극소수만이 신고되고, 기소되며 또한 그 안에서 극소수가 처벌받는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면서 발생하는 2차 성폭력과 재판과정에서 (재판부에게)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입증해야하는 상황은 현재 성폭력관련 입법이 여성의 경험을 부정하고 남성중심의 시각이 투사된 결과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겠다는 한나라당의 발상이 매우 정치적인 판단과 전시적 효과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진정성'을 가지고 성폭력 범죄율과 재범의 감소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면, 성폭력 범죄자를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이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인권교육, 피해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와 지원체계를 만드는 일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그 동안 국가권력이 성폭력 범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불신을 해결하고, 수사 및 사법 절차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의 이번 발표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성폭력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감시'를 여성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통해 합리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다른 범죄까지 확장시키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성폭력 범죄자로 국한되어 논의된 유전자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현재 대상범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감시가 여성의 인권 증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 공동체에서 어떤 집단의 인권을 담보로 또 다른 집단의 인권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고, 인권의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지의 소산이다.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이들의 유전자디비를 구축하겠다는 생각은, 지금은 범죄자를 향해 있지만 언젠가는 국민 다수를 향해 '감시'의 칼날로 세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