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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행정기관·사인에 의한 구속·감금에도 사법심사 도입돼야"

인권위, "인신보호법 도입 환영" 의견표명

형사피의자에 대해서만 인정되고 있는 구속적부심을 행정기관 및 사인에 의한 체포·구속까지 확장하는 인신보호법 도입에 대해 국가인권위(아래 인권위)가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현재 부랑인의 보호나 정신의료기관에의 수용, 개인에 의한 수용시설에의 감금 등은 실질적으로 인신을 구속하지만 구속 초기에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6일 인권위는 제8차 전원위원회를 통해 나경원 의원(한나라당)이 발의한 인신보호법안(아래 법안)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표명'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에 회부된 이 법안은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수감된 경우는 물론이고, 부당한 행정처분에 의해 △장애인 생활시설 △정신의료기관과 요양시설 △부랑인시설 등에 갇힌 사람, 개인 또는 민간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사설시설에 부당하게 수용된 사람은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법안은 관할 지방법원의 심리 결과 구금 또는 수용이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는 즉시 구금해제하도록 하며 구금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7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또 구금자가 △구금해제된 사람에 대해 같은 사유로 재구금하는 경우 △법원의 조사를 방해하는 경우 △조사를 위한 법원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처벌하도록 했다.


"모든 형태의 체포·구속은 사법부 판단 거쳐야"

인권위는 법안에 대해 "우리 헌법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경우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형사소송법은 형사피의자에 대해서만 구속적부심사를 인정하고 있을 뿐 행정기관 및 사인에 의한 체포·구속에 대해서는 법원의 구속적부심사를 인정하고 있지 않아 수용자 인권보장의 사각지대로 남겨져 있고 인권침해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어 "인신보호법의 제정이야말로 우리 헌법의 요청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법안의 일부 문제점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먼저 법원에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주체를 법안의 제2조가 "부당한 행정처분에 의하여…시설에 수용된 자"로 규정하며 장애인복지법, 정신보건법, 노인복지법 등에 따른 시설을 열거한 것에 대해, 출입국관리법상의 외국인보호소 수용자와 전염병예방법상의 격리수용자 등 "법안에 열거되지 않은 시설의 피구금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또 "적법한 행정처분에 의해 구금되었지만 이후 구금사유가 소멸되어 마땅히 구금이 해제되어야 하는 자가 계속 구금되어 있는 경우"에는 "구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며 "법률상 정당한 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는 자"로 "일반적·추상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인권위는 법안 제3조가 구제신청권자를 "피구금자·법정대리인·후견인 또는 피구금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자"로 한정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의 수용·보호시설의 수용·구금자들에게서 발생되고 있는 인권침해의 상황을 살펴보면 외부교통권이 철저하게 차단되어 사실상 피구금자 스스로 구제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움은 물론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의 경우도 구제신청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되고 있"다며 누구든지 구제를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위는 법안이 재판소요비용을 구제청구자 또는 구금자에게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아동, 노인, 부랑인 등 자력이 없는 피구금자의 청구권이 사실상 봉쇄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비용부담은 구제청구를 남용하는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피구금자에 대한 구금자의 구제청구권 고지를 명문화하며 △구금시 구금자는 피구금자의 가족 또는 대리인에게 구금이유와 일시, 장소 등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법원의 조사·심리·판결의 시기도 현행 구속적부심과 같이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신보호법, 만병통치약 아니다"

한편 인신보호법 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권위 논의 과정에서 의견서를 제출한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인신보호법이 제정되면…인권보호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부당한 구금을 당한 자가 구금 이후에 구제청구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커다란 한계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인신보호법과 함께 행정기관에 의한 구금을 인정하고 있는 각종 법률을 개정하여 수용자의 인권을 개선하는 조치가 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당사자의 동의없이 보호의 필요성만을 내세워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각종법률을 전면폐기하고 △각종 시설을 대상자의 욕구에 맞는 형태의 '주거 및 관련분야 급부 및 서비스를 일정기간동안 제공하는 시설'로 전면 전환하며 △불가피한 강제수용의 경우 요건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황필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도 이번 권고에 대해 "외국인보호소의 경우 단속과 보호 강제퇴거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행정기관에 의해 체포와 구속, 감금이 이루어지며 영토 밖으로 쫓아내는 강제력까지 발휘되지만 사법적인 통제가능성은 전면적으로 배제되어 왔다"고 환영하면서도 "외국인보호소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법안의 절차가 보완되지 않으면 현재도 시행되고 있는 강제출국에 대한 이의신청에 비해 간소하게 되었다는 점 외에는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청구를 해야 개시되는 적부심이 아니라 모든 구금에 대해 사법부의 심판을 받게 하는 독일식 인신보호법 도입도 검토해 볼 수 있겠다"며 "강제출국의 대기장소가 대상자를 구금하는 보호소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팀장도 "불법구금에 대한 구제책이 생긴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면서도 "사회복지시설 등에 감금된 수용자의 경우 불법감금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미약해 법원이 제대로 구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법원 판결에 의해 풀려난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대책의 부재도 아쉽다"며 "피구금자 입장에서는 풀려난 후 시설 밖 생활이 불투명해 보이면 굳이 구제를 신청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의견표명에 대해 나 의원실 관계자는 "인신보호법 논의가 탄력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며 "4월 중 국회 법사위에서 입법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