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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군 인권문제 더 이상 숨길 일 아니다"

'사병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 열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이른바 '인분 사건'이 발생한 후 군대 내의 인권침해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병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진지한 모색이 진행됐다.

1일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평화·인권단체들은 '사병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국가인권위에서 개최했다. 지난 1월 10일 육군훈련소에서 한 중대장이 192명의 훈련병에게 인분을 입에 넣도록 명령한 사건에 대해 『반갑다 군대야』 저자이자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김삼석 씨는 "'인분 사건'은 이라크의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에 버금간다"며 분노를 표했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사회적인 비판이 거세게 일자 육군은 20일 물의를 일으킨 이모 대위를 긴급 구속했고 조사단을 편성해 진상규명에 나섰다. 이어 육·해·공군 신병 양성 교육기관에 대해 전면적인 특별감사가 시작됐고, 국가인권위와 열린우리당도 현장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조사 후 조사에 참가한 이들 중 몇몇이 한 발언은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열심히 하다가 조금 지나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가해자를 오히려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허평환 육군훈련소장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성격이상자"라고 이번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발언들은 군 관련자들의 군대내 인권문제에 대한 시각이 국민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반해 군대내 인권침해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분 사건'이 있고 난 직후인 15일에도 육군2사단 고정현 일병은 상급자의 인격모독으로 목을 매 자살했고, 얼마 전에는 육군훈련소에서 아들의 죽음이 '자살'임을 인정하라는 훈련소 측의 강요에 사망한 훈련병의 아버지가 건물에서 투신하는 사건도 있었다. 육군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군대에서 행해진 폭행 건수는 밝혀진 것만 해도 605건이나 되고, 해마다 5천 명 이상의 정신질환자가 발생하고 자살자도 100여 명에 이른다. 군대내 인권침해가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홍구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는 "한국의 병역제도는 구조적으로 사병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 상임이사는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사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가혹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게 하는 조건"이라고 지적하며 "간부 상호간, 간부와 사병간, 사병 상호간에 발생하는 가혹행위는 군대의 위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전가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는 간부 상호간 혹은 간부와 사병간의 가혹행위의 파장이 사병 내부로 확산된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군대에서의 인권침해 경험이 사회로도 이어진다"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군사주의 문화의 확산을 경계했다. 표명렬 군사평론가도 "인권부재 군대문화의 문제점은 '권위주의의 만연'"이라고 지적하며 '사병인권법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군대 내 소원수리제도에 대한 개선 방향으로 △신고자에 대한 신변 보장 △'신고'에 대한 인식 전환 등이 제안됐다. 또 군대와 지역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군을 일상적으로 감독하고 군내에 민간 상담원을 두는 방안도 제기되고, 국방부 훈령인 군인복무규율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군대내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결국 '병력 감축'"이라고 주장한 한 상임이사의 말처럼, 군대내 인권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번 토론회에서는 군 인권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으로서 '징병제 문제'가 부분적으로 언급되기는 했지만 구조적인 원인과 해결방안이 좀더 폭넓고 깊이있게 모색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군대내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군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날 제시된 '상대적으로 빈곤한' 방안들은 군내의 인권 개선이 여전히 멀고도 험한 길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