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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유해정의 인권이야기 ◑ 가려진 진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주종우 씨는 아들 얘기에 목부터 메였다. 2001년 3월, '몸성히 돌아오겠다'던 아들은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주만에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군대에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돈으로 면피하는 놈들은 무식한 놈들이라며 힐난했다는 그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무식하고 힘없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구나'하는 생각에 무너져 내렸다. 자식을 잃은 부모치고 누가 억장이 무너지지 않으랴마는, 군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들에겐 슬픔을 넘어 처절한 배신감과 분노가 응어리져 있다.

군의문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99년. 20여 년간 키운 아들을 하루 아침에 잃은 것도 모자라 죽음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했던 유가족들이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아들들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군의문사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면서 국방부는 사상 최초로 특별합동 조사단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특조단은 아무런 '의혹'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군대내 사망자는 1998년 248명에서 2002년 158명으로 35%나 줄었고 자살사고도 102건에서 79건으로 줄어들었지만, 군의문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져만 가고 있다.

군의문사 문제는 '조사'와 '결론'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사망통보를 받고 달려가 보면 이미 '자살'로 결론이 나 있고, 사건현장은 '말끔히' 청소돼있다. 수사기록을 보여달라는 호소와 동료 부대원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는 일언지하에 묵살되고, 그렇게 아들들은 의혹의 무덤 속에 파묻혀 버린다. 이는 사망사고에 대한 조사를 오로지 '군'만이 담당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결과에 따라서는 해당부대의 지휘관에 대한 처벌은 물론 군 전체가 발칵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에, 한솥 밥 먹고사는 '군'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한 일. 여기에 사고는 매우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군에 대한 사회적 감시나 접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은 문제를 심화시킨다.

설사 백 번을 양보해 군의 조사를 신뢰한다 해도 '결론'은 수긍하기 어렵다. 군은 대부분의 사망사고를 '자살'로 결론지으며, 그 이유를 모두 '개인의 나약함'으로 전가한다. 내성적인 성격, 가정문제, 여자문제, 금전문제 등 천편일률적인 분석 앞에서 유가족들은 "내 아들이 호소하던 군대내 폭력과 가혹행위, 괴롭힘의 문제는 어디 있냐"고! "5천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왜 갑자기 군대에서 정신질환을 앓게되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 한줌 흙으로 보내지도 못하고 영안실 냉동고에 아들을 넣어두고 유가족들은 투쟁에 나선다. 삭발을 하고 농성을 하고, 국방부와 국회, 거리를 오가며 아들의 죽음을 밝혀 달라고, 제2, 제3의 자신들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지난해 이 염원은 '군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으로 담아졌지만, 법안은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오는 3일 오후 5시, 시청 앞 광장에서는 '군, 경 의문사 합동 추모제'가 열린다. 군대 내에서의 폭력을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혹은 '추억거리'로 회상하는 우리사회를 반성하 며, 다시는 이러한 '억울한 죽음'이 생겨나지 않기를 읍소하는 심정으로 광장에 나서봄은 어떨까? 넋들의 명복을 빈다.

◎유해정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