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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병역거부 운동과 평화헌법수호 운동의 연대

[기획] 평화운동의 새로운 도전 ④ (끝)

한국의 병역거부운동과 일본 평화헌법수호 운동의 만남

이번 국제회의 부문워크샵 가운데 하나였던 '한-일 평화운동의 연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병역거부운동과 일본의 평화헌법수호 운동의 연대문제였다.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군대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한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신장이 현실적 목표인 상황이다. 즉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여야 할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측면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이미 그들의 법정진술을 통해 보여주었던 군대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신념, 평화와 안보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는 생각들은 아직 한국 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전후 헌법이 제정되고 나서 군대의 보유를 금지했다. 물론 한국전쟁 당시 주일미군이 한국으로 차출되어 나가자 안보공백을 핑계로 자위대가 만들어졌지만, 이 역시 공식적으로 국가의 군대는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군사비 지출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자위대의 병력은 20만명에 달하지만 헌법 9조에 명시된 군대보유 금지 조항 때문에 공격용무기의 생산과 수입을 하지 못하며, 징병제를 시행할 수 없고 (이라크 파병으로 깨졌지만)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금기사항이었다. 근대화 이후 계속된 전쟁 속에서 인류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에서 전후 60년 동안의 탈군사화는 평화헌법을 통해 지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의 탈군사화는 자위대의 존재 이외에도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즉 일본의 탈군사화는 한국, 대만, 오키나와의 전쟁기지화와 핵우산을 비롯한 주일미군의 막강한 전력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주한미군의 안보우산 속에 있으면서도 지독한 군사주의 사회를 형성한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의 탈군사화는 가볍게 볼 수 없다.

군대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실천으로서 병역거부가 계속되어 온 한국이지만, 군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군대개혁 요구로 자신들의 주장을 소극적으로 펼쳐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그리고 피폭을 비롯한 끔찍한 전쟁의 기억 속에서 '군대 비보유'라는 탈군사화 사회를 만들어냈지만, 자위대 창설, 군사비 지출 세계 2위, 이라크 파병 속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개헌 시도를 막고자 하는 일본 평화운동은 만나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특히 전후 60년의 평화와 탈군사화 속에서 군대와 폭력 그리고 전쟁을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군대 없는 이상한 나라는 일본뿐'이라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현실 속에서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은 징병제를 통해 군사화된 사회가 개인들에게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일본 사회가 헌법을 통해 표방했던 비폭력, 비군사적 수단을 통한 평화 추구가 매우 소중한 자산이며, 인류의 보편적 지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점을 병역거부운동이 일깨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사회에서는 과거 일본의 침략역사를 들어 평화헌법 개정 논의를 일본이 1945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군국주의 부활 시도라고 치부하며 군대의 비보유와 탈군사화를 적극 추구한 평화헌법의 정신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평화헌법수호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병역거부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평화운동은 군대에 대한 반대, 탈군사화에 대한 지향을 정립하고 이를 위한 현실개입지점을 잡아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병역거부운동과 평화헌법수호운동이 서로 연대하여 한국과 일본의 평화운동이 각각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부딪힌 문제들의 실마리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이 날 부문워크샵에 참여한 한일 평화운동가들은 병역거부자들과 '헌법 9조회'라는 일본의 네트워크 운동단체들과의 연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의 반핵운동과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

동북아의 평화운동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의 반핵운동과 이를 지역적 차원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이다. 미국과 북한의 핵을 포함한 군사적 대결상황, 수개월 안에 대량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일본의 핵능력,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 이렇듯 동북아시아는 유일무이한 피폭지역이면서 현재도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곳이다.

일본은 피폭국으로서 자신들의 경험을 대규모 반핵운동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던 조선인 피해자 7만 명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피폭을 당했지만 일본은 이런 경험을 철저히 일본만의 것으로 제한했으며, '비(非)일본인' 피폭자를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아 왔다. 이 때문에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피폭의 역사적 경험이 망각되고 오히려 핵이 민족해방을 가져온 축복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선인 피폭자 피해보상운동과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이 일본 평화운동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 평화운동 역시 일본의 운동과 연대하여 반핵운동을 동아시아의 보편적 운동으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중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은 가장 첨예한 핵위협지대인 동북아에서 한국, 북한, 일본의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공동안보조약이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핵무장 위협은 언제라도 상존하며, 항구적인 관계정상화가 되지 않는다면 이 지역은 언제라도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핵보유가 문제되고 있지만, 사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고 러시아, 중국, 미국은 핵무장을 한 상황에서 북한의 선택은 국가적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은 가장 주요한 핵위협인 미국의 핵우산을 철회하고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상호 신뢰에 기반한 대안적인 안보구상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모든 국가들이 핵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핵무장 아니면 핵우산을 택하고 있는 동북아의 상황은 더욱더 비핵지대화 운동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이 더욱 발전한다면 미국과의 동맹, 자주국방이라는 선택지만 가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상호 신뢰에 기반한 재래식 전력 군축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은 일본의 피스데포와 한국의 평화네트워크가 뉴욕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왔으며 올 10월 26-28일 서울에서 열릴 한일 국제회의를 통해 비핵지대의 구체적인 실현 경로를 찾아갈 계획이다.


낙담보다는 희망을

동북아 지역은 유럽이나 여타 지역에 비해서 국가적 대결구도가 극심하고 시민사회의 성장도 더딘 지역이다. 이는 평화운동을 제약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국제회의 기간에 확인했던 것처럼 병역거부운동과 평화헌법수호운동,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비롯한 반핵운동 등 군대/군사력에 기반하지 않는 대안적 안보와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 또한 열려 있다. 이제는 희망을 가지고 꾸준한 실천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덧붙임

오정록 님은 평화네트워크 활동가이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