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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선군정치가 빠질 함정, 군사주의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3호 | 2009년 9월 3일
제목 부제목
1. 인권과 충돌하는 군사주의

군사주의는 지배권력이 법률 또는 민주적 절차 대신 군대나 경찰 등이 가진 무력을 통해 인민을 통제, 지배하며, 대내외적인 갈등을 군사적인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어떤 사회가 군사화 된다는 것은 군사주의적인 요소가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군사 외적인 영역에까지 군대 또는 군사주의의 영향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곧 그 사회의 인민들의 인권이 침해받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군대에 의한 인권침해는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현대사의 아픈 기억인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공수부대 군인들은 광주시민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의 점령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9만 명을 넘어섰다. 군대에 의한 이와 같은 인권침해는 살인과 파괴를 연습하는 군대의 속성 자체에 의해 항상 준비되어 있다. 군대의 초법적인 행위들이 용인되고, 불법적인 구금이나 고문 등이 은폐되며, 군대 내외의 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것 역시 군사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양심에 맞지 않는 명령에 대한 거부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권리도 군대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일수록 인정받기 어렵다.

동시에 군대가 유지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상명하복의 규율은, 군대의 안팎에서 어떠한 인권침해가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군대 내부에서는, 명령체계의 유지라는 명목으로 폭행이나 차별 등 인권침해가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인권침해도 대부분 정당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은폐되거나 왜곡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군대 안팎의 인권침해는 모든 국가에서 항상 심각한 문제로 존재한다.

남한사회를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남한사회를 지배했던 독재군부 세력이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고,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가 침투하여 경직되고 가부장적인 사회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오랫동안 문제시되어온 군대 내의 인권침해와 군대 내 의문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과도한 국방비는 인권이나 복지 관련 예산의 증가에 걸림돌이 된다. 최근 들어 경찰이 인민의 정치적 자유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모습 역시, 아직까지도 남한인민의 인권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군사주의의 잔재이다.


2. 군대를 강화하는 ‘선군정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선군(先軍)정치’는 1990년대 중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승계와 함께 공식 무대에 등장하게 된 북한의 독특한 정치개념이다. 선군의 개념은 좁게는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우고 국방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주체사상의 기치 높이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기 위해 우리 당이 선택한 전략적 노선"이라는 군사적인 개념이면서, 넓게는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하여 조국의 안전을 사수하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고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혁명적으로 벌려 나가는 것"(2003년 3월 12일자 노동신문)이라는 사회운영 전반에 대한 개념이기도 하다. 2009년에도 노동신문 등 북한의 주요 3개 신문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서 ‘선군의 기치 따라 백승을 떨쳐온 우리 조국’, ‘선군의 위력을 백방으로 강화’, ‘온 사회에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기풍을 더욱 철저히’라고 표현하는 등 선군정치에 대한 강조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후 북한 사회가 식량난 등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당시 거의 유일하게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던 군대조직을 활용하여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군대 내부 및 북한 인민의 동요를 억제하고, 외부로부터의 침략 위협을 방어하는데 있어 주요한 정치개념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선군정치에 따라 북한의 군대는 자위권을 위한 무력집단이자 혁명을 수행하는 혁명의 주된 동력으로 그 성격이 강화될 수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에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고, 곧바로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식민지배나 전쟁의 공포에 특히 민감하다. 북한의 경우에는 더더욱, 미국의 경제봉쇄와 군사위협에 의해, 또는 거대한 규모의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 등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전쟁과 침략에 대한 현실적인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포위 의식’과 그에 대한 대응이 일상을 관통하고 있는 북한사회의 상황을 감안할 때, 선군정치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3. 군사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선군’

하지만, 사회구조에서 군대가 우선순위가 되는 ‘선군’의 개념이 인권과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선군정치와 군국주의는 정치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도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군국주의, 군권정치에서 군대는 착취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지만 선군정치에서 인민군대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의 주도적 역량"(2006년 7월 15일자 통일신보)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입장은 군사주의로 인한 인권침해를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집단의 전형적인 태도와 동일하다. 북한이 이러한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군대의 인권침해적인 성격과 군사주의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파악과 문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에서도 이미, 군대를 강화하는 선군정치에 의한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탕알이 없이는 살아도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표현처럼 부족한 식량의 분배에 있어 군대가 일반 인민보다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거나, 장기간의 군복무 기간으로 인해 일반 인민들의 일상적인 농사 및 공업 생산 등이 영향을 받아 어려움이 더 커지는 등, 선군정치가 군대를 강화하면서 북한의 사회경제구조를 왜곡시키는 점은 북한인민의 인권수준을 더욱 후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경제구조의 왜곡은 군대에 편입될 수 없는 사람들 -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 에게는 차별과 배제로 작용하여 그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정부가 과연, 삶이 힘들어진 북한인민의 정치적 요구를 군대를 이용해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4. 군대 중시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북한은 이러한 선군정치와 군사주의의 연관성과 그 인권침해적인 속성에 대해 인식하고, 스스로 선군정치에 대해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평화를 지향하고 전쟁을 부정하는 방향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과 모순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군정치와 같이 군대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대의 비중을 자위적 역할을 위한 최소한으로 축소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체제의 긍정성 여부와는 별개로, 현대사회에서는 한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으며, 진정한 공존은 군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남한이나 미국 등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북한 역시 군사경쟁을 중단하고 함께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이에 대한 성찰 없이 자위권이나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곧 병영국가, 군사독재국가, 인권침해가 은폐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선군정치가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 주장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긍정성마저 훼손시키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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