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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④ 고대 청소용역노동자들 투쟁

그들과 함께, 그 곳에서


고려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다시금 곱씹는 것은 그 투쟁이 저임금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거나 사회권운동의 앞길을 '뻥' 터주었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고려대 투쟁은 요구나 성과 모두 여느 비정규직 노조설립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투쟁의 과정만큼은 분명 색달랐다. 노조설립투쟁에 인권운동이 처음부터 결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이라는 '거창한' 과제를 두 어깨에 걸고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아래 인권팀)이 유독 고려대 청소용역노동자들에게 주목한 것은 몇 가지 기대 때문이었다. 당시 인권운동사랑방의 핵심적인 목표는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의한 인권침해 당사자들과 함께 싸우는 투쟁을 만들자는 데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당사자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대학은 다른 사업장에 비해 저임금노동자들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을 뿐더러, 학생-졸업생-교직원 등으로 투쟁주체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고려대에는 학내 저임금노동자 문제로 꾸준한 활동을 벌여온 학생모임 '불철주야'가 있었다. 실제로 인권팀은 노동자들과 신뢰를 쌓는데 있어서 불철주야의 덕을 톡톡히 봤다.

5월 노동절을 맞아 불철주야가 주선한 간담회에서의 서먹한 만남을 시작으로 인권팀은 그해 늦봄과 한여름을 노동자들과 함께 났다. 고대 청소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은 새벽 5시이다. 근로계약서상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이지만, 그렇게 출근해서는 일인당 5백 평에 달하는 광활한 담당구역을 청소해낼 수 없다. 학교와 용역업체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새벽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임금에서도 빼 왔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임금은 에누리도 없는 65만원! 모든 수당을 다 포함해서다. 월차니 연차니 하는 휴가는 애초에 허용되지도 않았다. 반장, 소장격의 남성 중간관리자들로터 모욕적인 말과 협박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예 일상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일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계약 해지. 10년을 넘게 일해도 매년 재계약 시기가 되면 해고의 칼바람이 나부끼는 3개월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그들의 신세다.

인권팀은 우선 기본적인 생활조차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부당한 인권침해임을 말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를 들고 학교를 누볐다. 쥐꼬리만한 임금으로는 병원도 여행도 갈 수 없는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이 저임금의 인권침해를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 여명의 노동자들이 진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즈음 재계약 시기가 닥쳐왔다. '이번엔 60세 이상은 고용승계 안 시켜준다더라', '야간근로까지 해야된다더라'…이에 주기적으로 모여 노동조건에 대한 의견교환을 해왔던 백 여명의 노동자들과 학생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은 6월초부터 매일 총회를 개최하고, 공동대응을 논의해갔다. 그 즈음 고려대는 용역입찰업체 프리젠테이션을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노동시간연장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인권팀은 사회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고용승계보장과 노동강도 강화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사회단체 집회를 고려대 본관 앞에서 벌였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투쟁결의도 높아져갔고, 본관 앞 집회와 본관 점거 투쟁을 함께 이어나갔다. 결국 학교는 전원 고용승계 보장과 정년제한 삭제를 용역계약서에 명시하겠다는 약속을 통보해왔다. 감격스러운 반쪽의 승리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노조를 결성했다.

고려대 청소용역 노조설립 투쟁에는 '선수'가 따로 없었다. 매일 열린 총회에서 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모든 결정은 토론과 전체 합의로 이루어졌다. 해고의 칼날을 바로 눈앞에 두고 노동자들은 참으로 힘든 결정들을 용기 있게 내렸고, 그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당당해져갔다. 노조가 설립된 후에도 인권단체들과 불철주야는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으로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계속 이어갔다. 이젠 노동자들의 정치집회에 이들과 마주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인권 관련 토론회에서 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인권운동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광범위한 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권리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각 없이는, 아무리 팍팍한 삶이라도 그저 참을 도리밖에는 없다고 여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좋은 권리보장제도라도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시혜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인권침해의 피해자로 인식하기 어려운 사회권 영역에서 권리주체를 조직화하는 운동의 기획은 더욱 요청된다. 고대투쟁은 정규직화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나 개별 사업장의 임금인상투쟁으로 그친 점 등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인권팀은 그 속에서 권리주체 조직화라는 사회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저임금노동자 뿐만 아니라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하는 사람들, 수도세 못 내 물이 끊긴 사람들, 모여 살 집을 못 구해 흩어져야 하는 가족들,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들이 인권침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사회권 운동이 만나야 할 권리주체들이다. 따로 따로 떨어진 점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소통하고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권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