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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⑩] <자료> 2006년 청소년인권운동, 파란을 조직하다

2006년은 한국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운동주체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분수령으로 기록될 만한 해였다. 지금까지 청소년인권운동은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도, 운동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구심이 되는 단체들도,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이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독려하는 활동가도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 발짝 나아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한두 명의 스타들에 의존하는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청소년인권운동의 한계는 청소년인권과 관련해 숱한 의제가 생산되었지만, 정작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결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러한 반성에서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는 공식 결성되었고, 한 해 동안 청소년인권 정세를 개척하고 주도해나가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나갔다. 네트워크의 존재와 함께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개정안)은 청소년인권의 요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매개 구실을 담당했고, 전교조·흥사단 등 기존 교육운동진영이 주축이 되어 등장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역시 청소년인권을 핵심적인 사회의제로 부각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사건, 사건, 사건…

2006년은 학생인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들이 연거푸 터져 나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3월 ‘죽음의 트라이앵글’ 동영상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내신-수능-논술이라는 가혹한 입시지옥 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5월에는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른바 ‘무릎 꿇은 여교사’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교권의 의미를 되묻는 사회적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6월 군산 초등학교 교사의 체벌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을 낳더니 8월에는 대구에서 ‘체벌 200대’ 사건이 터져 체벌 논쟁이 불타올랐다. 교육당국은 해당 교사를 징계하고 ‘체벌금지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으레 그렇듯이 관심이 시들해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물론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뜬’ 사건 말고도 무수한 학생인권 침해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학생인권 침해는 학교의 당연한 일상으로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으니까. 그럼에도 예년에 비해 이들 학생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높아진 데서 알 수 있듯이,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확산되었다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청소년 저항, 학교를 겨냥하다

2006년은 거리나 광장에서뿐만 아니라 억압의 중심지인 ‘학교 안’에서 학생 인권 보장을 주체적으로 요구한 청소년들의 저항이 눈에 띄게 늘어난 해이기도 했다. 4월 서울 양동중학교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2백여 명이 모여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내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꿈쩍도 하지 않자 7월에 2차 시위를 준비하는 끈질김을 보였다. 아쉽게도 2차 시위는 학교측의 원천 봉쇄로 불발에 그쳤지만, 이들을 지원하고자 찾아간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학내 시위를 원천 봉쇄한 학교측의 탄압을 규탄했다. 5월에는 서울 동성고 오병헌 학생이 강제 0교시 수업이 시작되는 아침 7시, 교문 앞 1인시위에 나섰다. 오병헌 씨는 체벌, 두발제한, 강제 0교시와 보충·야간학습, 외부 집회 참가 금지 등 학생인권을 억압한 학교를 비판하면서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 후 2차례에 걸친 징계 결정에도 불구하고 오병헌 씨는 징계에 대한 불복종도 계속해나갔다. 방학 중인 8월 초에는 7개 도시의 교육청 앞에서 학생 인권은 나 몰라라 하는 교육당국의 책임을 묻는 동시다발 청소년 1인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어 같은 달 말에는 수원 청명고에서 일방적으로 개악된 두발규정에 대한 저항으로 1차 학내시위가 일어났다. 1교시 야간학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틈타 일어난 1차 시위는 교사들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며칠 뒤 2차 시위가 계획되었지만, 이를 눈치 챈 교사들이 소지품 검사, 휴대폰 압수 등 대대적인 봉쇄 작업을 펼치면서 시위는 결국 무산되기에 이른다. 11월 학생의 날을 맞아서는 서울경기학생회연합 주도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회 100인 선언이 발표되었고, 12월 8일 ‘인권의 날’을 앞두고서는 파주 금릉중학교 학생들이 체벌, 강제이발, 소지품검사 등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와 파주시교육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저항의 버팀목, 네트워크 돛을 올리다

이러한 청소년 저항의 곁에는 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있었다. 네트워크는 자칫 각개 분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청소년들의 저항 소식을 널리 알림으로써 청소년인권을 적극 의제화하는 한편, 저항하는 청소년들을 징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지원그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독자적으로도 다양한 기획활동을 벌여 청소년들의 저항을 독려하고 청소년활동가들의 연대와 활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네트워크의 출범은 2006년 2월 ‘청소년인권운동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열린 청소년인권활동가 워크숍이 낳은 결실이다. 지금까지 지지부진을 거듭해 오던 청소년인권운동을 한 단계 고양시키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네트워크 결성이 제안됐고, 다음 달 후속 모임을 갖고 네트워크는 정식으로 돛을 올리기에 이른다. 애초 청소년인권단체나 개인 활동가들의 느슨한 연대체 정도로 출발하고자 했던 네트워크는 ‘5·14 청소년인권 행동의 날’ 행사 준비를 거치면서 활동에 가속도를 붙여나갔다. 단지 1회성 행사의 개최로 만족하지 않고 2006년을 적어도 두발자유를 쟁취하고 학생인권법을 통과시키는 원년으로 만들자는 패기 아래 후속 활동들이 잇따라 기획됐다.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 ‘학생인권 탱탱 볼 굴리기’는 학생인권법안 통과와 두발자유를 외치는 청소년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한편, 가정과 학교라는 유폐된 공간을 넘어 광장으로 나오는 경험을 청소년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학내 저항을 계획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신청을 받아 학교를 직접 방문, 청소년들의 학내시위를 응원하는 ‘스쿨어택’ 사업은 학교라는 억압의 장벽에 대한 도전이자 학내에서의 청소년 직접행동에 불을 붙이기 위한 이중의 목표를 갖고 기획됐다. 스쿨어택은 상반기 서울 독산고와 양동중, 하반기에는 수원 청명고에서 진행되었다. 거리에서의 저항보다 억압의 심장인 학교에서 저항을 기획하는 일은 더 큰 용기와 청소년들의 결집을 요구한다. 학교와 사회가 가르쳐온 금기로부터 상상력을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쿨어택은 소수 학교에서만 진행되었다고는 해도 청소년인권운동의 획을 긋는 새로운 시도였음에 틀림없다.

다른 한편, 네트워크는 청소년 여름 인권캠프를 통해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성장을 위한 내부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누구에 의해서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발굴, 재정리하는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라는 기획기사를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되는 주간매체 <인권오름>에 연재하는 일도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와 역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네트워크의 활동은 불꽃처럼 타오른 청소년들의 저항을 책임 있게 밀고나가는 단위가 없어 몇 년간 정체를 거듭해 왔던 청소년인권운동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청소년인권을 가로막아 온 오래된 금기와 성역에 도전하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를 추동해 냈다. 네트워크의 활발한 활동은 청소년인권모임의 결성과 활동을 격려, 지원하는 촉진제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고, 대개 서울 중심으로만 전개돼 오던 청소년인권운동을 전국화하는 작은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당한 청소년, 저항하는 청소년, 징계위기에 놓인 청소년들과 연대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운동단위가 상설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의 몫은 컸다고 볼 수 있다.

위로부터의 연대, 아래로부터의 선언

청소년인권운동의 도전과 성장은 교사들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구실도 함께 했다. 7월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청소년단체가 함께 모여 발족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는 학생인권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국회 앞 1인시위, 학생인권 촛불문화제, 학생인권 버튼 달기 운동, 학생인권 지지 선언 등의 활동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여러 참가단체들이 운동본부에 기대만큼의 조직적 힘을 싣지 못하면서 의례적 활동 외에 힘찬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명분 쌓기 운동’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운동본부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2006년에 주목할 만한 흐름은 전교조 지도부나 소수 교사들의 활동에 머무르던 학생인권 지지운동이 전교조 조직 아래에서부터 분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교조 경북지부는 9월 22일 경북지역 학생인권백서 발간과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경북교사 인권지킴이 선언’을 발표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전교조 전북지부 역시 11월 2일 학생의 날을 앞두고 ‘전북교사 학생인권지킴이 선언식’을 가졌다. 단 두 곳에 그쳤지만, 전교조 지부 차원에서 발표된 학생인권선언들은 청소년들의 삶 가까이에 선 교사들의 자발적 다짐과 연대를 이끌어냈다는 의미에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서는 교대와 사범대에 재학 중인 예비교사들이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선배교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예비교사 청소년인권 연대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 대한 고민을 예비교사의 주요 과제로 받아 안겠다는 이들의 선언은 기성 교사들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됐다.

뒷짐 진 국가

이처럼 청소년의 존엄을 짓밟는 사건들이 연거푸 이슈로 떠오르고 억압에 저항하는 청소년들의 직접행동도 늘고 있지만, 교육당국의 대책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6년 5월 교육부는 강제 이발이나 폭언 등 학생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학활동을 강화하고 학생인권 침해 관련 민원이 제기되었을 때에는 현장 확인 등 사실여부와 정황을 철저히 조사하여 엄정 처리할 것을 시·도교육청에 주문했다. 그러나 이 지침이 하달된 이후에도 대구에서 일어난 체벌 200대 사건, 수원 청명고와 파주 금릉중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생인권 침해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교육청의 대처 역시 미온적인 수준에 그쳤다. 개별 교육청 차원에서도 ‘학생인권 보호 및 침해 예방’ 지침이 마련돼 단위학교에 전달되었지만, 학교현장의 적극적 변화를 추동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교육부는 또 국가인권위원회와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함께 상반기 중 학생인권 실태를 전면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인권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실태조사를 하반기로 연기하였을 뿐 아니라, 실태조사 결과가 지금까지 제기돼 왔던 숱한 문제들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함을 버젓이 알면서도 종합대책의 뚜렷한 방향을 내놓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교육부의 소극성은 체벌금지 법제화 방침의 실종에서도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대구에서 일어난 체벌 200대 사건으로 체벌금지 여론이 끓어오르자,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체벌금지를 명문화하는 방안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최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생인권법안은 1년 내내 국회에서 잠을 잤다.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국회 앞 1인시위, 기자회견 등이 여러 차례 이어졌고 학생인권 침해 사건이 연거푸 터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학생인권에 대한 열망을 외면했다.

현재 청소년인권과 관련하여 그나마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국가기관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국가청소년위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정부부처와의 조율, 국민적 공감대, ‘학교공동체’의 유지나 학교명예 등 기성논리에 신경 쓰면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학교 안 청소년인권의 기준을 확립하고 학교를 인권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학교공동체’라는 허울 아래 청소년의 존엄성을 볼모로 붙잡는 구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제와 다른 내일, 2007년의 파란을 준비하며

2006년은 청소년인권을 부여잡고 끈질긴 싸움을 벌여나갈 구심으로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자리를 잡았고 청소년 주체들의 학내 저항이 확산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도약을 이룬 해였다. 그러나 2006년을 휩쓸었던 ‘학생인권법 통과’나 ‘두발자유’라는 목표는 여전히 성취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그만큼 운동의 핵심주체들이 튼실하게 서지 못하고 대중화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학생인권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임들이 결집했고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지만,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청소년인권운동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청소년인권운동에 참여하는 청소년 주체들은 소수에 머무르고 있고, 청소년인권 함성은 전국 곳곳에서가 아니라 몇몇 도시만을 중심으로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인권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활동력과 인권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교육적·물리적 지원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운동의 의제가 여전히 ‘학생 인권’에만 머무르고 있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청소년 내부의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문제가 청소년인권의 이름으로 제기되고 각 소수자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같은 한계를 조금씩 넘어가면서 어제와 다른 내일을 그리는 일은 2007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2007년은 학교라는 억압의 성벽을 허무는 작업을 한층 고양시켜나가면서도 청소년 내부의 소수자 문제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때이다. 그리고 2007년에는 대선이 있다. 대선을 계기로 청소년들의 요구를 결집, 확장시키고 청소년에 대한 구시대적 사회 인식에 종언을 선언해야 한다. 2007년은 2006년보다는 많은 자산을 갖고 출발한다. 2006년 활동이 낳은 결실이다. 그만큼 2006년보다는 좀 더 나은 2007년의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파란이 있는 곳엔 더 큰 파란을! 파란이 없는 곳엔 파란을 준비하라!’ 파란만장 전국행진의 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덧붙임

자료 출처; 청소년, ‘미래’를 넘어 ‘현재’로 - 2006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