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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가 폭력을 은폐하는 증거

고문과 살인 방조한 외교문서 공개


20일 대표적인 조작간첩사건인 이른바 '재일본한국인 서승·서준식 형제간첩사건'과 관련된 외교문서가 공개돼, 국가가 고문사실을 은폐해 왔다는 것이 재확인됐다.

공개된 문서는 71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간첩 혐의를 받고 투옥되었던 서준식 씨가 74년 5월 3일 자신을 찾아온 당시 일본 사회당 니시무라 간니치 참의원에게 "전향을 강요당하며 고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고발했다. 이후 '서승 형제를 구하는 회' 등 단체들은 일본 주 오사카 영사관에 찾아가 고문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총영사는 한국 외교부에 현지상황을 알리며 고문사실을 질의한다. 이에 외교부가 '사실 무근'이라며 고문 사실을 부인하는 답변의 문서들이 이번에 공개된 것.

이에 대해 서준식 씨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공작에 의해 죽은 사람 이름까지 다 밝혀내는 등 당시 고문이 없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이미 거짓으로 판명이 난 상태"라며 공개된 문서가 거짓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서 씨는 "처음에는 방문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단지 일본 의원 뺏지를 달고 있는 걸 보고 절박한 심정에 고문 사실을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중앙정보부 직원들과 교도관 등이 "거짓말이다. 그만하라"고 고함을 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했다. 결국 모든 사실을 다 듣지못했지만 니시무라 의원은 "사상과 양심의 신앙을 잃지 마십시오"라고 서 씨를 격려하며 돌아갔다.

하지만 공개된 문서에서 법무부는 "학대한 사실이 없어 책임문제가 있을 수 없다. 서준식은 현재 건강하다"며 고문 사실을 적극 숨겼고, 심지어 "서준식의 접견 후 동의원(니시무라 참의원)이 광주교도소장에게…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서 철없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거짓 사실로 답변을 대신했다.

폭력적인 강제전향공작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73년 '전향공작반'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의문사위 전 조사1과장 염규홍 씨는 "서 씨가 고문 사실을 폭로한 당시에는 각 교도소마다 전향공작반이 설치되어 있었고, 폭력 재소자까지 동원하며 고문을 용인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의문사위의 조사에 따르면, 국가가 저지른 살인행위인 전향공작으로 73∼75년 광주교도소 9명, 대전교도소 4명, 73∼76년 대구교도소 5명, 73∼78년 전주교도소 2명 등이 생명을 잃었다.

염 씨는 공개된 문서에 대해 "외교부와 법무부 등 각 정부 부처들이 독재정치를 지지하며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은폐하는 데 모든 역량을 투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 정부의 진지한 반성은 아무 것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시 외교부 등이 고문을 중지하도록 노력했던 사람들의 뜻을 따랐더라면 서 씨의 고발 이후에 벌어진 고문과 그에 따른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