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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농성장을 가다> ① 국가보안법 폐지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편집자주] 지금 여의도는 4대 개혁법안 등의 연대조직들이 천막 농성을 시작해 휴업상태에 있는 '불꺼진 국회'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권하루소식은 오늘부터 5번에 걸쳐 각 사안의 농성 책임 활동가들을 만나 투쟁의 쟁점과 전망을 들어본다.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책임운영위원장인 박래군 활동가를 제일 처음 만났다.


래군 활동가는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인 이른바 '386세대'. 99년 12월 28일부터 13일간 명동성당에서 계속된 '혹한기 노상 단식 농성'을 가장 지독스러운 국보법 투쟁으로 기억하는 그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시작해 인권운동에서 잔뼈 굵은 활동가가 되기까지 국보법 폐지 운동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를 종이 호랑이로

87년 6월 항쟁 이후 운동 사회에서는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원론적인 수준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있어 국보법은 '눈에 보이는 억압의 실체'였다고 말하는 래군 활동가는 "운동사회에 직접적인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이 법의 폐지는 양심수 석방운동 등 진보진영의 폭넓은 중심 이슈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은 91년 국보법 날치기 개악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배신한다.

99년 김대중 정부 말, 국보법 폐지 운동은 다시 불붙기 시작한다. 현재 국보법 폐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전신인 '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연대회의'와 '국가보안법반대국민연대'가 이 때 결성된 것이다. "국가보안법반대국민연대는 당시 전술적으로 완전 폐지보다는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7조 삭제'를 주장했는데 이는 폐지 투쟁이 인권적 관점을 획득하는 성과였다"고 그는 분석한다. 국보법 폐지 운동을 보다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 제기한 인권운동의 노력인 것이다.


국보법, 극우의 바이블

현재 국보법으로 인한 시국사범이 현저히 줄었고, 한총련 대의원이 되면 자동으로 수배되는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 국보법 피해는 더 이상 없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 그는 단호했다.

국보법의 정체는 극우에서 오히려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 그는 "진보진영에선 국보법을 단순히 '하나의 법'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극우에게는 이들이 유지하려고 하는 체제의 신념을 형성하는 바이블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에겐 '믿고 의지하는 경전'을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국보법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현정부를 향해 '색깔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도대로 아직은 '색깔론'이 우리 사회의 안보불안을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보법'이라는 가장 무서운 흉기부터 제거한 후 과거청산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완전히 '무장해제'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보법 폐지는 시작일 뿐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지만 국보법 폐지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먼저 형법의 '안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문제인데, 한나라당을 달래기 위해 내놓은 열우당의 형법 개정안은 국보법의 독소조항을 이어받을 수 있어 더욱 문제라고 한다. 폐지 이후 형법에 존재하는 국보법의 잔재도 손봐야 하며 파생 법률인 '보안관찰법'과 함께 '공안문제연구소'도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우려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기득권층은 새로운 안보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테러방지법"이라고 한다. 유사한 악법의 제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그는 기득권과 싸우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저항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런 농성장을 '불법설치물'이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이것은 '기본권'을 말하는 '표현의 열린 공간'이며 이후 광범위하게 전개될 생존권 투쟁에서도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6년의 쇠사슬을 끊는 '국보법 폐지 운동'은 보다 진전된 '표현의 자유' 쟁취를 위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