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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날'이 남긴 것

지난달 26일 여성부 앞에 간병인,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모였다. 최저임금도 못 받거나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는 임금을 받는 이들은 여성들이 이렇게 저임금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여성부에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여성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은 통계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최저임금 미만인 노동자 중 여성이 64%라니 더 말할 게 뭐 있겠는가. 여성 집중 업종이나 직종은 어김없이 비정규직이고 저임금이니, 여성이 저임금 노동자층을 이루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 투쟁에 나서면서부터 유독 여성 노동자가 더 가난하고 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가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청소용역노동자가, 간병노동자가, 가사도우미 노동자가 각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투쟁에 나서면서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자 전체의 문제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조를 만들고 나서야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는 월급을 받게 된 청소용역 노동자에게 24시간 일하고도 최저임금 미만인 간병노동자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얼마 안 되는 일당을 떼어 직업소개소에 줘야 하는 일용직 가사도우미의 사정은 하는 일없이 월회비를 꼬박꼬박 떼가는 유료소개소에 진저리치는 간병노동자와 다르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을 빈곤 상태로 몰아넣는 저임금 문제는 여성 노동자라면, 여성노동권 문제를 고민하는 이라면 우선적으로 제기해야 하는 과제이다.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날' 행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획되었고,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과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민주노총 여성연맹, 고려대 청소용역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집회를 기획할 때만 해도 '비정규직, 빈곤의 문제라면 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 대해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많았다. 그러나 여성의 비정규직화, 저임금 문제에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관행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이를 '여성의 문제'로 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이 절실하다.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일로 굳어진 청소, 보육, 간병, 상품 판매, 식당일 등이 대표적인 저임금 직종이라는 사실은 '여성의 일', '가족영역에서의 일'로 정형화될 경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기 위해 필수적인 청소, 빨래, 요리 등의 재생산 노동들이 여성들에 의해 무급으로 제공되는 상황에서, 미화원, 식당 노동자, 보육교사 등의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나 제공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루 8시간 꼬박 일하고도 총액 60만원 정도 받는 청소 노동자, 하루 24시간씩 주6일 근무해도 일당 5만원 밖에 못 받는 간병인의 현실은 이렇게 합리화돼 왔다.

때문에 저임금 문제는 여성노동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로 현 시기 중요한 여성 현안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면 여성의 경제적 독립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땅에서 여성이 그럴듯한 일자리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아니면 구하기도 힘들고 정규직이라고 해봐야 언제 구조조정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회 참가자들은 여성 비정규직과 저임금 문제를 여성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잡을 것을 요구했지만, 여성부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대며 면담 요청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여성노동자 한마당' 행사를 진행하면서 각자의 상황과 요구를 나누고 저임금 타파라는 공통의 요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날 우리는 '직업소개소, 용역회사의 중간착취 근절', '일용노동자를 위한 공공직업소개소의 활성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로 내걸었다. 이 요구들은 최근 여성비정규직들의 투쟁 사례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에 여러 부분에서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사는 저임금 여성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조직과 개인이 모여 빈곤과 저임금을 여성의 문제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여성의 빈곤과 저임금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 더 큰 전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좀더 활발한 논의와 투쟁이 요구된다.

◎구미영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페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