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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형사소송법 개정 이렇게 ② 영장 없는 강제처분

남용되는 긴급체포, 지문날인, 긴급감청 … 영장주의 원칙 지켜져야

지난해 12월 인권활동가 30명은 국회에서 '집시법 개악 반대' 등을 외치다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은 지문날인을 완강하게 거부하여 지문을 날인하지 않은 채 당일 밤에 모두 석방되었다. 이들이 주장한 것은 지문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신체검증영장'을 받아오라는 것. 개인의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지문을 강제로 채취하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이처럼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강제처분을 막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법원 또는 수사기관이 구속·압수·수색·검증 등의 강제처분을 행할 때에는 법원 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야 한다"는 영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영장주의는 "강제처분이 사람의 신체나 의사의 자유 또는 물건에 대한 지배권에 제한을 가하게 되므로, 강제처분이 남용되어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법원이 먼저 강제처분의 실시여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기재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권리 보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영장에는 처분의 대상, 시각 또는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하고, 이른바 '일반영장(general warrant)'은 금지된다. 영장은 검찰의 신청에 의해서 법원이 발부하는 것이고,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바에는 영장 없는 강제처분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영장제도를 무색케 하는 긴급체포의 남용

이런 영장제도에는 예외가 있다. 체포할 때에는 당연히 체포영장이 필요하지만 수배 중인 피의자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발견하였을 때와 같은 긴급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긴급체포' 제도이다.

대한변협은 『2003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현행 긴급체포 제도가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수사단계에서 풀려나는 긴급체포 피의자의 비율은 2001년 37.6%에서 2002년 42.1%, 2003년 상반기 현재 44.7%(54,099명 중 24,187명)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또 전체 체포 피의자 중 상반기 구속영장 피의자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긴급체포 피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13.9%에서 2002년 15.5%, 2003년 상반기 16. 8%(322,032명 중 54, 099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피의자를 긴급체포로 일단 잡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 대목은 1997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전에 긴급구속 제도가 남용되고 있던 상황과 같은 양상으로 보인다.

이런 원인으로는 검찰이 "1998년의 '지명수배 절차에 관한 예규'에서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로 지명수배된 기소중지자 등은 긴급체포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활용하도록" 한 것에 있다고 대한변협 보고서는 지적하고, 이로 인해 체포영장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고 비판한다.


지체없이 체포영장을 청구하도록

법무부 검찰개혁자문위원회와 대법원 산하의 사법개혁위원회는 이렇게 남용되는 긴급체포제도의 개선 방향으로 긴급성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과 사후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대 이은모 교수는 지난해에 발간된 『형사법 연구』제19호에서 현행 긴급체포 제도는 형사소송법이 긴급체포에 대한 사후의 사법적 심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며, "긴급체포에 있어서는 긴급체포 후 지체없이 체포영장을 청구하도록 요구하여야 하며, 또한 이러한 절차를 포함해서 구속영장 발부까지의 기간을 48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긴급체포 후 48시간 이내 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되어있다.


긴급감청 요건 강화해야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 과정에서도 영장주의의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지난해 검찰총장은 수사비밀 유출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검찰 출입기자들의 통화내역을 무더기로 조회하여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통화내역 조회는 검사장의 승인만 얻으면 되고, 이 승인도 사후에 할 수 있는 허점이 있었다. 이처럼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긴급감청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는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 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5개 인권사회단체들은 "긴급감청의 허용요건과 적용대상 범죄, 기간의 엄격한 제한"과 함께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의 승인 절차를 보다 엄격히 해서 법원의 영장을 통해서 허가되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청원을 낸 바 있다.


영장 없이 촬영된 사진 등 증거능력 부인돼야

또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의해 임의로 촬영된 사진 내지는 비디오물을 증거로 쓸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에 근거 규정조차 없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지난해에 발간한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에서는 이 문제를 형사소송법의 관계 규정을 신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변은 "개인의 용모에 관하여 사전 동의 없이 더군다나 영장 등 요건을 갖추지 않고 촬영한 사진 내지 비디오를 수사의 자료로 삼는 것은 수사기관의 자의적·작위적 수사를 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규정을 신설하여 불법적인 사진촬영 등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영장 없이 이뤄지는 강제처분은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영장주의 원칙은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실질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