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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죽은 자의 동지'들이 걸어온 험난한 길

신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기 의문사위 활동 담아

은폐되고 뒤틀린 현대사 위에 어떤 자들의 죽음은 흔적 없는 기억으로 기록되어 왔다. 이미 깊숙한 무덤 안쪽으로 사그라진 듯한 '망각된 죽음'이지만, 이를 되살려 표류하는 영혼을 달래고 과거의 권력과 공생하는 지금의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은 건재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온전한 진상규명을 저해하는 미흡한 의문사특별법에 기초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의 활동을 살피면서, 죽은 역사를 되살리고자 하는 자들이 시시각각 마주해야 하는 어두운 오늘날의 초상을 각인시킨다.

"이제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2000년 10월, 의문사위는 유가족들이 감행한 422일간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로 세워졌지만, 지극히 미비한 조사권한과 제한된 조사 기간은 온전한 진상 규명을 막으려는 보수 정치세력들의 입김이 개입된 산물이었다. 유가협 소속 유족들의 '희생자 명예 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을 그린 <민들레>를 제작한 바 있던 '빨간 눈사람'(www.redsnowman.com)은 신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하여, 규명되지 못한 과거사를 짊어진 오늘날과 다시 한번 호흡한다.

'죽은 자들의 동지'였던 의문사위의 민간 조사관들이 대면해야 하는 현실의 장벽은 높다. 군, 경찰, 기무사에서 파견된 공무원 출신의 조사관들과 떨떠름한 동거를 해야 하고, 조사권한을 제약하는 법적 한계에 둘러싸인 채 오직 '열정'과 '의지'를 벗삼아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가해자인 국가 기관과 싸우며 진상 규명을 위한 험난한 길을 떠난다. 작품은 때론 유가족들의 눈물 섞인 질타를 받아야 하고 죽은 자들의 무덤 앞에서 진상 규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민간 조사관들의 씁쓸한 무게감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의문사 인정 19건, 기각 33건, 진상규명 불능 30건. 진상규명을 저해하는 물리적인 한계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수치를 남긴 채,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1차 활동을 마감한다. 카메라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기관'이라는 허울에 가려진 의문사위의 텅빈 공간을 응시하면서, 조사권한 강화와 조사 기간 연장을 부르짖으며 다시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과 함께 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조사 권한을 강화하고 조사 기한을 연장하라는 유가족들과 사회단체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2기 의문사위가 뾰족한 권한 확대 없이 조사 기간만 연장된 채로 설립, 활동 중이다. 그나마 올 6월 활동시한이 마감될 예정이어서 유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