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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보람과 미래' 대신 죽음 내몬 탄압만

<현장> 김주익 지회장 떠나보낸 한진중공업

"보람과 미래가 있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정문 앞 육교에 걸려 있는 거대한 선전판. 선전판 너머에는 지난 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85호기 크레인이 우뚝 솟아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보람과 미래가 있'다는 한진중공업에서 김 지회장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협상 하잔 말이가 말잔 말이가"

"임단협-'임'금은 동결이고 '단'협은 퇴보요 '협'상 하잔 말이가 말잔 말이가?" 직원 식당 외벽에 휘갈겨진 삼행시는 사측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완강하게 버텨 2002년 임단협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한진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농성천막 안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노조 도진해 조직부장은 "사측은 김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와야 협상하겠다며 금속노조 위원장이 대신 참여한 자리도 거부해 왔다"며 사측의 불성실한 협상태도를 질타했다. 지난 6월 노동부 관계자가 배석한 가운데 임금인상과 손배·가압류의 원만한 처리 등에 대해 잠정합의한 것도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조합 측의 주장이다.

이러면서도 사측의 탄압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알려진 대로 사측은 지난 91년 이후 작년까지 조합원 113명에게 18억 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고, 이번 달에도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150억 원 손배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업무방해를 이유로 한 사측의 고소로 김 지회장을 포함한 지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13일에는 해군과 해경 물량을 수주하는 특수선지회 조합원 180명에게 개별 손배소 위협도 가해졌다. 특수선지회 이봉희 산업안전부장은 "최초 파업 참가율이 97%에 이를 정도로 강고하게 단결했던 특수선지회 노동자들이 방위산업체라서 파업이 금지된다는 이유로 회사의 집중적인 협박 목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21년 경력의 특수선지회 노동자 박래영 씨는 "사측은 조합이 주도하는 농성에만 참여하지 않으면 집에만 있어도 임금의 70%를 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말했다. 또 박 씨는 "지난 5월 말 특수선 사업부가 마산에서 부산으로 옮겨왔는데 임단협 협상 지연으로 사측이 약속했던 전세자금 대출이 되지 않아 가족들과 생이별한 상태"라며 "마산에서 부산까지 출퇴근하는 조합원도 있다"고 힘든 사정을 털어놨다.


"농성에만 참여 안하면 임금 70% 준다"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조합원들의 파업 대오 이탈도 가속화됐다. 특히 김 지회장이 죽음을 결단한 직접적인 계기는 문제 해결 전까지는 진수시키지 않겠다며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던 배를 사측에서 빼냈던 사건으로 보인다.

85호기 크레인 바로 옆 도크에서 경계를 섰던 한진중공업 울산지회 노동자는 "사측을 협상 자리에 나오게 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14일 새벽 2시 갑자기 밀고 들어온 관리자들이 순식간에 배를 움직였다"며 "희망이 사라지자 대오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업 이후 700명에 달했던 농성 참가자들이 150여 명으로 줄어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 조합원은 "우리가 그 배를 지켰다면 지회장 목숨은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눈물지었다. 농성장 주변 벽에 남겨진 "참석 안한 조합원들 양심이 안 찔리나"는 낙서는 마지막까지 남은 조합원들의 절박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배 지켰다면 지회장 구했을 텐데"

크레인 밑에 마련된 빈소 안에서 해고자 박성호 씨를 만났다. 그는 91년 박창수 집행부 체제에서 교육선전부장으로 일했고, 당시 김 지회장은 문화체육부장을 맡고 있었다. 28년 한진 어용노조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90년 위원장으로 당선된 박창수 씨는 이듬해 안기부로부터 집중적인 전노협 탈퇴공작을 받다 구속되고 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결과적으로 박 씨 입장에는 10년 전 같이 싸웠던 '삼총사' 중 두 명이 모두 곁을 떠난 셈이다. 박 씨는 "그 사람, 위원장 되고 나니까 원칙적이고 실천적으로 변했어. 말 한마디 쉽게 내뱉지 않았어. 농성 조합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을지도…"라며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탈출구는 없나

이렇게 손배·가압류를 이용한 노조탄압이 배달호 씨에 이어 김주익 씨마저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탄압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배달호 씨 분신 63일 만인 지난 3월 10일, 두산중공업 노사는 조합원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완전 취하하고 조합비 가압류는 40%만 적용하는 데 합의해 부족하지만 다른 사업장에도 문제 해결의 희망을 던져줬다. 하지만 10월 현재 민주노총 산하 48개 사업장이 1727억원의 손배·가압류에 묶여 있는 등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3월 5일에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민변이 노동자 개인과 조합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 제출되지도 못했다. 당시 이를 추진했던 민주노동당 인권위 김정진 변호사는 "이 안이 통과됐다면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을 텐데 다른 사안과는 달리 소개의원조차 구하지 못했다"며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한편 21일 오후 2시 한진중공업 김정훈 사장과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이 참석하는 교섭이 재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사측은 "경영안정 및 불법행위 방지를 위해 개인 가압류는 해제하더라도 조합에 대한 가압류는 해제할 수 없다"고 밝혀 김 지회장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해결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