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정부가 앞장서 저임금 용역 양산

공공부문 실태조사…사람까지 '물자'로 취급해 용역화 추진



각종 차별과 항상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 용역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음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공공연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5개 단체는 17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국가가 직접 관리·출자했거나 국가기관의 예산운영지침을 따르는 공공서비스부문 사업장을 대상으로 지난 5월 한달 동안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공립대, 시설관리업체 등 총 9개 지역 34개 사업장의 44개 파견·용역직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이전에는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를 파견·용역직으로 대체했다는 응답이 전체의 57%인 25개 직종에 이르러 공공부문조차 비정규직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97년 12월부터 정부의 각종 지침에 따라 본격화된 구조조정 결과라는 것이 단체들의 설명이다.

남우근 전국시설관리노조 법규차장은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용역노동자들은 계속 근무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형식적으로는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업체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는 '불법 파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징표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도 못받아

이들 파견·용역직의 경우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기준법상 주당 근로시간 규정을 위반한 경우가 전체의 25%에 달했고, 경비직의 경우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무려 101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514,150원으로 책정돼 있는 법정 최저임금을 실질적인 기본 임금으로 책정하고 있는 곳도 12곳이나 됐다. 남 법규차장은 "이는 법정 최저임금이 임금의 '최저선'이 아니라 '상한선'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최저임금 규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경비직의 경우, 임금이 37만원 정도에 불과한 사례도 있었다.


조달청 '물자조달계획'이 저임금 용역 조장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애림 정책국장은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이 용역직과 그에 따른 폐해를 조장하는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5천만원 이상의 물자조달계약을 체결할 경우 조달청에 의뢰하도록 되어 있는데, 조달청이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해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업체와도 용역계약을 맺어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대의 경우, 2000년 용역업체로 선정된 ㈜대호안전관리공사가 대학당국이 애초 책정했던 예산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 조달청으로부터 용역계약을 따냄으로써,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예년에 비해 5만원이나 깎인 임금(여성 40만원, 남성 45만원)을 받게 되기도 했다. 용역화로 인해 저임금이 구조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정책국장은 "사람을 '물자'로 취급하고 있는 조달청 물자조달계약에서 용역계약을 제외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는 외주용역화 중심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공공부문에서부터 현실화된 최저임금이 적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진호 교수(인하대 경제학부)는 △1인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최저임금제가 아닌 3-4인 가족의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생활임금제의 도입 △최저가 낙찰제에서 '적정가 낙찰제'로의 전환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에 입찰시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을 해결책으로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