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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국가인권위 한 돌…인권위의 분발을 위하여

“인권경시에 경종…성과는 미흡”(세계일보)

“약자의 인권 보호 물꼬는 텄다”(문화일보)

“인권의식 ‘진일보’-‘미흡’ 엇갈려”(국민일보)

“인권국가 보루 초라한 첫 출발”(경향신문)

“인권위 한 돌…기대 못 미친 성과”(대한매일)

“인권위, 성과보단 실망 컸다”(한겨레)

“권위주의, 관료화, 폐쇄성, 비전문성…안팎 비판에 부딪힌 인권위”(오마이뉴스)


11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아래 인권위)의 출범 1주년을 맞아, 각 언론사는 앞다퉈 인권위 활동 1년을 돌아보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를 받아줄 수 있는 기관이 출범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과”, “인권문제를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부상시켰다”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진정사건 처리 지연에 따른 ‘빠르고 효과적인 구제’의 미흡, 폐쇄적인 조직운영, 현장 지향 노력의 소홀” 등의 문제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취약한 조사권한과 유명무실한 제재수단, 여타 국가기관의 견제” 등은 인권위의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인권단체든 언론이든 “당초 기대에 비해 역할이 부족했다”는 총론적 평가에 있어서는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권위의 분발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는가? 지난 1년 동안 인권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실마리를 찾아본다.


부푼 기대…몰려드는 진정인들

2001년 11월 26일, 광화문에 마련된 인권위의 임시사무실은 인권피해를 호소하러 찾아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제천시 장애인 임용차별사건(접수 1호),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교도소 종교활동금지 관행(접수 2호) 등 이날 하루 동안 접수된 진정 건수만 모두 122건. 2002년 10월말까지의 진정 건수는 모두 2천9백71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8~9건에 이르는 진정 현황은 인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지난 1년의 성적표는 기대 이하. 전체 진정 가운데 1702건, 즉 절반이 넘는 사건이 미해결된 상황이며, 그나마 구제가 결정된 사건은 28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사무처 구성 지연과 통합적 정보화시스템 설치를 위한 시간 소요”를 원인으로 제시하며, “점점 사건 처리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또한 “조사대상의 범위를 엄격히 규정한 법적 한계 때문에 각하 처리된 사건이 많았다(처리건수 대비 89%)”며 “현재는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 등을 통해 각하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만을 핑계삼아 진정인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안이한 인식이다. 인권위는 “전 직원의 조사와 상담 방법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지방사무소 개설”등을 법제도적 보완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진정사건 처리지연에 관한 공개적인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욕적 출발

2001년 11월 국정원의 느닷없는 테러방지법안 입법예고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 부를 만큼, ‘인권후퇴’를 예상하는 시민사회의 위기의식은 고조됐다. 그러나, 인권위에겐 거꾸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깊이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였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전형을 보여줬다.

입법예고 이후 2001년 11월 30일 테러방지법에 대한 심의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고, 12월 7일 공개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인권위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2002년 2월 20일 공식적으로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의견을 제출했으며, 4월 4일엔 인권위원장이 직접 국회의장을 면담하기도 했다. 인권위의 정책적 역할을 십분 발휘한 의욕적 활동이었으며, 인권위는 스스로 향후의 활동방향을 제시한 사례였다.

인권위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꼽혀온 구금시설을 향해서도 포문을 열었다. 2001년 12월 3일 구금시설에 대한 첫 방문과 면전 진정을 실시한 이래, 인권위는 지속적으로 구금시설을 방문하고 있다. 전체 진정건수 가운데 30%가 구금시설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점에서 나타나듯, 구금시설의 수용자들은 인권위의 가장 많은 ‘의뢰인’들이다. 구금시설 인권의 개선이 인권위의 성패를 판단할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늦어진 체제정비…그러나, 시작부터 방향착오

타 부처의 견제 속에서 지지부진했던 인권위 설립준비작업은 올 상반기 중으로 완료됐다. 1월 30일 총 215명의 정원을 확정하는 직제령이 통과됐고, 예산 192억원이 결정됐다. 이어 2월 5일 시행령의 통과, 2월 19일 사무총장 임명, 3월 29일 1차 직원선발, 4월 1일 사무처 공식 출범을 통해 인권위는 기본 틀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인권위는 중대한 방향착오의 우를 범하기 시작했다. 올 2월 28일 열린 인권위의 전원위원회 회의가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공개됐으나, 논의안건에 대한 방청을 제한하면서 인권위는 스스로 폐쇄적 운영의 길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사무처 직원 1차 채용과정에서는 ‘공정성과 투명성’ 시비마저 불거져, 초기부터 인권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인권위의 투명성과 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인권위 출발과정부터 시작되었으나, 인권위는 지금껏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의 공개 비판에 귀 막은 인권위

올 4월 30일 25개 인권단체는 인권위 출범 이후 최초의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고, 그동안 아껴왔던 비판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진정 처리에 있어소극적 자세와 운영의 폐쇄성, 관료화 등 현재 인권위를 향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이미 4월 30일 토론회에서 모두 토로됐던 내용들이다. 이어 20개 인권단체들은 5월 21일 인권위를 상대로 ‘국가인권위 운영 및 업무에 관한 공개질의’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6월 11일 인권위로부터 돌아온 것은 “법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투의 관료적 답변이었고, 결과적으로 6월 19일 인권운동사랑방의 협력거부 선언이 등장하게 된다.

인권위는 총 15회에 걸쳐 139개 단체와 간담회를 갖는 등 적극적인 의견수렴과 협력을 도모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비판적 문제제기’엔 ‘딴청’으로 일관하고 있다. 곳간의 곶감 빼먹듯 필요할 때만 인권단체들의 역량을 빌리면서도, ‘쓴소리’엔 계속 귀를 막고 있는 한, 인권단체들과 인권위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권고…그러나, 방향이 안 보인다

올 한해 인권위가 권고를 내린 사안은, △학교생활규정에 대한 권고(아동권) △전시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제출(표현의 자유) △보험업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제출(개인정보보호) △테러방지법 제정반대(자유권 일반) △산업연수생 단계적 폐지 권고(이주노동자 인권) △월드컵 기간 집회자유보호 권고(집회의 자유) △유치장 알몸수색 인권침해 결정(피의자 인권) △진주교도소 환자 형집행정지 건의(수용자 인권) △중국인동포 강제퇴거 명령 집행정지 권고(이주노동자 인권)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망 사건 손해배상권고(장애인 인권) △제천시 임용차별 시정권고(장애인 인권) △교도소 내 소수종교 집회 허용권고(종교의 자유) △대학신입생 연령차별 시정권고(나이에 의한 차별)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인권위가 관심을 기울여 온 점은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 활동의 주요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선 우려가 적지 않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사회보호법․보안관찰법 등 길게는 50여 년, 짧게는 십수년간 수많은 인권피해자를 양산해 온 대표적인 반인권법령들에 대해 인권위는 어떠한 해결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노동․주거․건강권 등 사회권 영역에 대한 인권위의 접근방향은 무엇인지, 현재의 인권위는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적은 인력과 제한된 권한 아래서, 인권위는 불가피하게 우선순위와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인권위의 ‘장기활동전략’과 ‘청사진’이다.


인권단체들의 대응

인권위 출범 1주년을 맞아 언론사마다 나름대로 인권위에 대한 평가의 목소리를 냈던 반면, 정작 인권운동 진영에서 별다른 평가도, 요구도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인권위를 적극 감시․견인․비판해야 할 인권단체들이 입을 닫고 있는 현실은 인권단체들에게도, 인권위에게도 ‘위기적 상황’이다. 이는 3년여에 걸친 힘겨운 투쟁 끝에 인권위를 건설했던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며, 인권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잦아들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다산인권센터가 발표한 26일자 논평에 주목해 보자. 다산인권센터는 “인권단체들도 이제 국가인권위를 뜨뜻미지근한 자세로 방치하거나 방관할 수는 없다. 지속적인 모니터와 대응 그리고 비판을 아주 혹독하게 진행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인권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적극대응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를 바로 세우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다산인권센터의 입장은 현 시기 가장 주목할만한 입장이다.

한편, 오는 11월 30일 열리는 2002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서는 다양한 소주제토론 가운데 하나로 ‘국가인권위 대응 전략’이라는 주제의 토론마당이 열린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세우기’를 위한 인권단체들의 공동모색이 이곳으로부터 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