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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사면의 역설

전두환, 노태우, 김현철, 정호용, 장세동, 권노갑….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권력형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국민화합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양심수 사면에 끼어 들어 간단히 사면과 복권을 챙겨왔다. 어디 12·12와 5·18, 한보사건 연루자뿐이겠는가. 권력형 비리의 공범자들에 대한 정권의 너그러움은 사면에 대한 회의론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최근 현직법관들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니다. 99년, 김현철 사면에 양심수를 끼워 넣는데 대해 여러 시민단체들이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연루자는 사면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제도화할 것'을 제의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사면법 개정을 위한 입법청원을 했다. 2000년에도 정부가 비리사건과 선거법 위반 관련 정치인들을 대거 사면·복권하려는데 대해 '원칙 없이 사면권을 남용해 사법권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면은 정권의 선심 베풀기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세력, 정권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과감한 관용을 통해 민주사회를 지향할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사회정의와 현실의 법이 충돌하여 빚은 잘못을 돌이키고 법의 경직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과연 '사면불감증'에 걸릴 만큼 대규모의 숱한 사면을 겪어온 우리가 진정한 관용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제2의 사상전향제도로 날을 세운 '준법서약제도'를 유독 양심수에게만 강요하고, 풀려난 양심수가 출소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을 할 경우 사면조치를 취소하겠다고 미리 엄포를 놓고, 출소 양심수에 대해서는 보안관찰을 강화할 테니 우익들이여 안심하라고 위로하고, 미결수와 정치수배자는 아예 제쳐놓은 것이 현 정권의 사면이었다. 양심수에게는 이런저런 족쇄를 채우고 권력형 범죄자들에게는 헐값으로 자유를 선사하는 사면은 그 본질적 의미를 잃고 대통령의 직권남용이 돼버렸다.

올해라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정치권이 잔재주로 "국민대화합"을 노래하는 사면을 연출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양심수를 들러리로 이용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 사면의 역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상·양심의 자유를 유린하고 노동자의 결사와 행동을 범죄시하는 법제도가 맘껏 활개치고 있는 한 사면은 양심수의 물갈이에 불과하다. 인권과 양심을 가두는 감옥은 변함 없이 거기에 있고, 언제나 먹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