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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최종길 의문사 타살 확정

의문사위, "소극적 저항도 민주화 운동"


73년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아래 중정)가 간첩사건으로 조작․은폐한 '최종길(전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의 진상이 30년만에 타살로 밝혀졌다. 27일 오전 10시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기자회견을 열어 "최종길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했다고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중정은 최 교수가 남산 분청사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간첩사실을 자백한 후 조직을 보호할 목적으로 투신자살했다고 주장했었다. 중정은 또 최 교수가 58년 프랑스 유학 중 동백림(동베를린)에서 북한 공작책으로부터 세뇌교육을 받았으며, 60년에는 북한으로 가 노동당에 입당하고 학원에 침투해 학생들에게 반정부 데모를 하도록 선동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표내용은 당시 중정 감찰실의 조사와 88년 서울지검의 내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의문사위는 △피의자 신문조서, 현장검증조서, 수사보고서 등 송치 서류의 허위작성 △간첩자백 사실의 조작 △현장훼손 및 현장검증의 생략 △고문 사실의 은폐 △88년 검찰 조사 직전 중정 수사관들의 사전공모 등을 근거로, 중정의 발표 및 그 근거는 모두 믿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의문사위는 이어 당시 중앙정보부 차철권, 김상원 등 수사관들이 △심한 고문 등으로 소생이 불가능해진 최 교수를 7층 비상옥외 계단에서 바닥으로 던졌거나, 이미 고문으로 인해 사망한 최 교수를 △자살로 가장하기 위해 상당한 높이까지 운반해 아래로 던져 추락시켰거나 △바닥에 운반해 추락으로 인한 사망으로 가장하기 위해 발바닥에 둔기 등으로 외력을 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최 교수가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인정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문사위는 "최종길은 중정의 각종 불법수사에도 불구하고 강요된 진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에 저항했다"고 밝혔다. 현 '의문사법'에 따라 의문사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이 규명돼야 하며, 민주화운동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 이와 관련 의문사위는 "유신반대활동을 한 것과 같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항거 이외에 이 건과 같이 권위주의적 공권력
행사에 대해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저항한 행위도 (민주화운동에) 포함된다"고 위원 전원 찬성의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의문사위는 민주화보상심의위에 고 최종길 교수 및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를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차철권 등 가해자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 제249조에서 정하는 공소시효가 경과되었음이 명백하므로 고발 및 수사의뢰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회견장에서 기자들은 고 최종길 교수의 타살사건이 조작․은폐된 조직체계에 대해 질문했으나, 의문사위는 조사권한의 한계를 이유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련여부에 대해 확답을 하지 못했다. 결정문에는 "은폐와 조작은 조일제 차장보의 재가 하에 5국장 안경상의 묵인과 장송록 단장의 지시로 수사 9과 서철신 과장, 정낙중 계장, 권영진 수사관 그리고 10과의 차철권 등이 공동으로 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씨는 "결과발표가 미흡하지만 위원회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반면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결정문에는 조사권한의 한계가 무엇이고 누가 협조하지 않아서 어떤 부분을 규명하지 못했는지 하는 부분까지 포함돼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오는 29일 오전 10시30분 민변 사무실에서는 고 최종길 교수의 유가족 및 인권․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소시효 배제 입법화를 촉구하며, 이후 최종길 의문사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