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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가인권위원회, 너무 소극적이다"

법 제정 1주기 토론회, 인권단체 비판 봇물


"호주에서는 장관이 공무를 수행할 때 직접 운전합니다. 부득이하게 기사가 운전을 할 땐 앞 좌석에 타지요. 장관과 운전기사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국가인권위원장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성당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1주년 기념 인권사회단체 토론회'에서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는 국가인권위(위원장 김창국)의 관료화를 점잖게 풍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천주교인권위 등 25개 인권사회단체들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에 대해 그 동안 아껴왔던 비판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민주적 절차는 어디로?

먼저 인권하루소식 이주영 편집장은 무엇보다 국가인권위의 설립 및 운영과정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편집장은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의 인선, 설립준비기획단의 구성, 이후 사무처의 구성과 활동 등 일련의 과정에서 밀실논의가 재연"됐고, "진정인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도 관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편집장이 발표한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차별조사 및 구제활동 실적은 실로 참담했다. 4월 10일 현재 접수된 진정사안은 1천5백44건, 면전진정이 1백35건이었지만, 당시까지 국가인권위가 처리한 사건은 단 한 건. 이후 제천시장 장애인 차별사건에 대한 결정과 두 건의 긴급구제조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인권위는 '빠르고 효과적이며 값싼' 구제절차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 편집장은 "조직정비가 늦어진 측면도 있지만 인권위의 의지부족과 관료적 마인드로 인해 가능한 일조차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회의 비공개주의인가?

이어 발제에 나선 한상희 교수는 주로 법과 시행령의 한계에 비판을 집중했다. 법 제32조 1항은 △재판․수사 혹은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이미 종료한 사건 △법원의 확정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사건 등을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위법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다룰 뿐이지만, 국가인권위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 '부당하냐, 아니냐'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 한 교수의 주장이다. 이는 현행법이 권리구제의 중복을 이유로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을 지나치게 축소했다는 지적이다.

또 한 교수는 "국가인권위는 자체가 국가기관이면서 국가기관을 상대로 전선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곧장 국가기관에 포위된 상태"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권우호적 세력과 연대를 강화해 인권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권단체들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나, 국가인권위는 운영의 폐쇄성으로 인해 인권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없애버렸다는 것이 한 교수의 진단이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3월 14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국가기관의 업무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 △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등에까지 비공개 가능성을 확장하는 '회의공개 및 방청 등에 관한 운영규칙'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정보공개법 제7조의 정보공개 예외사유보다 더욱 더 강한 장벽"이라고 혹평했다.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

세번째 발제자는 제천시 장애인차별 사건의 진정인 김용익 교수(서울대 의학)였다. 김 교수는 "내가 구제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며, 별다른 구제조치 없이 차별이었다는 판단만 내린 국가인권위를 비꼬았다. 김 교수는 이어 "국가인권위는 제천시장에게 사과를 '권고'할 수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안 했고, 위증에 대한 혐의가 있었음에도 조사조차 안 했다"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국가인권위가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고 꾸짖었다.

끝으로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현재의 국가인권위 구조는 의사결정과 집행이 분리돼 있다"며, "인권위원이 실질적으로 집행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국가인권위가 법 테두리 내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려고만 한다"며, "이렇게 되면 전문가에게만 의존하게 되며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쏟아지는 비판에 인권위 유구무언

발제자들의 발표가 끝나자, 방청객으로 참석했던 국가인권위 위원과 사무총장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졌다. 인권위원 곽노현 교수(방송통신대 법학)는 대외적 공개성에 대해 "원론적․총론적 수준의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좋은 것도 숙성기간이 필요하다"고 부족함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유시춘 인권위원도 "위원회 내부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을 100%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영애 사무총장은 "직제령이 통과된 것이 2월 중순이고 현재까지 1백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상태"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라며, 이에 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답변들이 참석자들의 비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대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겸허히 수용하겠다', '앞으로 잘하겠다'고 답해 왔다"며, "그러한 덕담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고 신뢰하지 못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이창조 상임활동가는 "현재 국가인권위가 처한 어려움은 시민사회와의 신뢰회복에서 찾아야 한다"며, 국가인권위 출범과 직원채용 과정에서의 비민주성에 대한 입장 발표를 촉구했다.

국가인권위 출범 이후 국가인권위에 대해 처음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를 바라보는 인권사회단체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로써 국가인권위가 인권사회단체들의 채찍을 달게 받아들여 이전보다 더욱 분발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