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민사시효 논리, 조작간첩사건 배상기각

배상심의위, 고문사실은 인정…재심청구 길 열려


조작간첩사건의 가해자에게 공소시효를 적용해 면죄부를 준 검찰이 이번에는 민사상 시효가 소멸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배상의 기회마저 박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제주지구배상심의회(위원장 김우경, 제주지검 소속)는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 이장형 씨가 고문 등 가혹행위와 증거날조에 의해 불법기소 당했다며 지난해 7월 청구한 손해배상 신청에 대해 시효소멸을 이유로 기각했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지검은 이씨가 사건담당 검사였던 이사철 씨와 고문경찰 이근안 씨를 독직가혹행위 등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기각한 바 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에 대해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불법행위가 종료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때에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씨는 84년 연행 후 57일간 법관의 영장없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간첩으로 조작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8년 8․15 특사로 가석방됐다.

하지만 이씨의 경우 복역 중에 공소시효 기간(5년)은 물론이고 민사시효 기간도 지난 셈이 되어, 시효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배상신청을 대리했던 이정희 변호사는 "이씨가 98년 석방될 때까지는 배상신청을 하는데 사실상 장애가 있었다고 봐야" 하지만 "배상심의회에서 이러한 시효중단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민사시효의 협소한 적용을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결정에 불복, 법원에 손배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한편, 제주지구배상심의회는 이근안 씨의 고문행위 여부에 대해 △비정상적인 구금일수 등 수사절차상 심각한 문제점 △비슷한 시기 불법감금 및 독직가혹행위 혐의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점 △다른 여러 사건에서 고문을 한 것이 인정되는 점 등을 근거로 가해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씨의 자백이 허위임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고문에 의한 '증거날조'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배상심의회가) 불법구금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 자체가 성과"라며, "이를 기초로 이씨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배상판결을 보고 법원은 재심을 받아들일 것"이고 "재심에서는 고문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가 되면 허위자백에 의한 증거날조 부분이 유죄로 판결받을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재심이란 이전 판결을 번복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새롭게 밝혀졌을 경우 대법원에서 확정판결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피해구제수단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