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헌재, 재소자 청원권 위협

재소자 서신에 대한 검열 합헌 결정


지난달 31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희 재판관)는 재소자서신검열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판결(99헌마713)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재소자의 통신비밀의 자유를 부인할 뿐 아니라 국가기관에 구제를 요청하는 청원권도 검열을 통한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해 보수성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재소자들이 서신으로 진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검열이 정당화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현재 군산교도소에 수용 중인 모씨는 99년 9월 대구교도소 수감 당시 소 내의 폭행가혹행위, 부당처우행위, 권리행사방해행위, 직무유기 등을 조사해 달라는 서신을 국무총리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감사원 등에 제출했다. 그러나 모씨는 허가받지 않고 서신을 보냈다는 이유로 금치 2월의 징벌을 받게됐다. 이에 모씨는 구수용자규율및징벌에관한규칙 제3조 제21호의 허가받지 않은 통신을 금지하는 규정이 수용자의 통신비밀의 자유와 청원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교도소 수용자가 제한 없이 서신을 발송할 수 있게 한다면, 마약이나 탈주, 재범의 우려가 많아 검열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서신에 대한 검열은 (중략) 부득이 할 뿐만 아니라 유효 적절한 방법에 의한 최소한의 제한이며, 통신 비밀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며 합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말 그대로 ‘최소한의 제한’이라면 검열을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근거가 명백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즉, 법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언론기관 및 인권․사회단체에 보내는 재소자의 서신은 검열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가기관에 보내는 서신을 검열하지 않을 경우 국가기관의 명의를 빌려 검열 없이 사인(私人)에게 서신을 발송하는 탈법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나아가 “헌법상 청원권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중략) 서신을 통한 수용자의 청원을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한다면 수용자가 악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에 대한 검열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청원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재소자들 현실 외면한 판결

국민의 기본권인 청원에 대한 검열을 인정하는 이번 판결은 재소자들이 음성적으로 국가기관에 서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각박한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현 행형법에 규정된 유일한 권리구제 수단인 법무부장관에 대한 청원의 경우, 검열로 인해 사문화했다는 비판이 빗발쳐 결국 검열규정이 삭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소자들에게 청원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집필을 할 때는 언제나 소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집필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보고전 접수 단계부터 거부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씨와 같은 일부 재소자들은 금치 2월의 징벌에 처할 위험을 무릅쓰고 출소자를 통해 허가 없이 서신을 기타 국가기관이나 법원, 인권단체에 발송하는 것이다.

우리의 법과 제도의 모형이 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수형자는 언제나 제한 없이 편지를 발송하고 접수할 수 있다. 다만 행형 목적이 위태롭게 될 경우 특정한 사람과의 서신왕래만을 금지하고 있다.(28조 2항) 서신의 검열 역시 명백한 위험 근거가 있어야 하며 변호인과의 문서교환, 연방 및 주의회와 의원에 대한 수형자의 서신은 검열대상에서 제외된다.(29조1,2항) 헌법재판소가 보기에 독일은 얼마나 위험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