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비정규직'을 해부한다 ③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노동자'

"작은 사장?" - "천만에 우린 노동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애니메이터, 학원강사, 전력회사 위탁수금원, 신문배달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노동조합법 상의 근로자임은 인정받았으나 여전히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성'은 인정받지 못해 퇴직금․연월차휴가․초과근로수당․최저임금․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적용 등 기본적인 노동권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고용 계약형식이다. 사용자와 도급 혹은 위탁계약을 맺었거나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은 정기적으로 출․퇴근해 회사측의 지휘 감독에 따라 업무를 하고 그 대가로 받는 돈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이에 이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4조 :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1호 :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출근 체크하는 개인사업자 봤나요?

6월 20일 점심 무렵 천호동 교보생명 앞. 한 여성의 목소리가 길가는 이들의 발을 붙잡는다. "우리는 개인사업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자예요" 마이크를 쥔 사람은 노동조합활동을 이유로 교보생명으로부터 지난 6월 1일 해촉당한 보험설계사 임미령 씨다.

보험설계사들은 말품과 다리품으로 보험을 '따내' 보험회사를 먹여 살린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장기근속수당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여성들이 대부분이지만 생리휴가․출산휴가는 먼 이야기일 따름이다. 이러한 부당한 대우는 회사가 보험설계사들을 '개인사업자'로 규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출근 체크 받는 개인사업자 본 적 있어요?" 길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건네주던 동료 보험설계사 이순녀 씨는 말이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개인사업자라고 해놓고 되레 하루만 출근을 안 해도 기본 수당을 깎아요. 그뿐 아니죠. 회사 돈을 수금해주는 건데 입금 수수료는 우리더러 내래요" 즉, 껍데기뿐인 '개인사업자' 규정은 되레 보험설계사들을 옭아매고 있다.


개인사업자 등록은 '함정'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다. "아침․저녁마다 출퇴근 카드기 찍어야 하고, 회사에서 작업 감독 받으면서 일을 해요. 근데 사장 말로는, 너흰 소사장이고 우리랑 평등하다고 해요" 경력 16년의 애니메이션 노동자 유재운(전국 애니메이션 노동조합 위원장) 씨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애니메이터들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무렵. 당시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은 그것이 '함정'인 줄 몰랐다.

오늘날 '개인사업자'라는 규정은 애니메이션 제작회사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십분 활용되고 있다. "일 없는 겨울철엔 해고하면 그만이죠. 4대 사회보험료를 안 내도 되는 건 물론이며 퇴직금이나 유급휴가도 안 줘도 되죠. 사장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예요" 유재운 씨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 결성에 적극 나선 계기는 3년 전 함께 일하던 선배가 위암으로 죽은 일이었다. 회사는 산재보험 혜택은 물론, 그의 가족들에게 퇴직금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현재 유재운 씨는 '예손'이란 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9명의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이 회사의 퇴직금 미지급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을 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주목하고 있다. 애니메이터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 마느냐에 이번 결정이 좌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