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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99년 종간사> 새 천년, 묵은 때부터 씻자


20세기가 저물고 Y2K의 불안과 함께 21세기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 천년을 맞는 지구촌의 풍경은 매우 분주합니다. 대형 행사들이 줄을 잇고, 새 천년 해맞이 여행 상품이 매진되고, 은행과 상점에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가운데 다가온 21세기는 그러나, 냉정하게는 20세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놀랄 만한 생산력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룩했던 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실험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었던 세기. 반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끊이지 않는 국지전이 학살과 고문, 폭력을 지구에 만연시킨 것도 20세기였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인류는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 등 각종 인권보장체계를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끝자락에 와 있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어둡고 비참한 반인권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경우, 20세기는 식민주의에 맞선 치열한 민족해방투쟁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투쟁을 멈춘 적이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고통, 제주 4․3의 상처, 전쟁시기의 학살, 독재시대의 고문과 폭력 등 산적한 문제 가운데 어느 하나 속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게 됩니다.

또 199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우리 사회는 군사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시대로 진입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자본주의의 확장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노동소외 현상의 강화, 구시대적 법과 제도에 의한 폭력이 여전히 상존했습니다. 여의도 앞 천막농성이 상징하듯이 20세기를 마감하는 오늘날에도 생존권조차 박탈당한 민중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빈곤층 1천만명의 광범위한 권리 박탈 상황이 인권의 진보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상식으로서의 인권을 수용하는 첫걸음으로 인식되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도, 국가보안법의 개폐도 여전히 보수 수구세력의 힘을 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21세기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낳은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 그로 인한 각종 불평등과 권리의 심각한 박탈 현상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20세기까지 그래왔듯이 21세기에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진보적 인권운동의 행진은 끝까지 진행될 것입니다.

<인권하루소식>에게 있어 2000년은 장미빛 희망의 새해일 수만은 없습니다.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온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노동자의 파업권이 계속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하는 한, 1천만 빈곤계층의 삶이 밑바닥을 기어야 하는 한, 고문가해자들이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한, 어디선가 또 다른 어린이들이 떼죽음을 당하게되는 한, 2000년은 ‘지난해’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93년 9월 7일 첫 호를 낸 이래 인권침해의 현장을 고발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인권하루소식>은 올 한해 동안도 분주하게 인권현장을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때로는 나태하고 때로는 관성에 젖은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이제 올 한해의 활동을 접고 <인권하루소식>은 새해 첫 주 다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좀 더 헌신적이고 치열한 <인권하루소식>으로 거듭나는 새해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신년 첫 호는 1월 7일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