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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제3회 인권영화제 상영작 소개 ① 대표작 및 개·폐막작


<편집자주> 제3회 인권영화제 상영작을 앞으로 7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동국대학교 학술문화회관에서 열릴 이번 인권영화제에선 총 35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76년 그레노블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기도 한 <칠레전투>는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 쿠데타에 의한 전복’이라는 드라마틱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민중들이 투쟁하고 분노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필름보고서다. 민중을 위해 민중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 영화를 제3회 인권영화제의 대표작으로 소개한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레지스탕스>는 90년 이후 아이티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치우침없이 드러내며, 아이티의 정치투쟁사를 비교적 정확하게 다루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다큐멘터리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칠레전투>의 현재적 의미를 표현한 영화가 바로 폐막작으로 선정된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이 작품을 통해 칠레의 신세대들이 어떻게 23년전 선배들의 경험을 공유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 칠레전투(Battle of Chile)
1976~78년/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287분/ 다큐멘터리/ 흑백

1973년 9월 11일, 세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된 칠레 인민연합정부의 살바도르 아엔데는 반동적 쿠데타 세력 피노체트에 의해 살해된다. <칠레전투>는 이 과정에서 완성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의 기록이다.

1972년 아엔데 정부의 출범 후, 어떤 제작 경험도 없던 파트리시오 구즈만과 5명의 동료들은 16mm 카메라와 나그라 녹음기 한대, 코닥 흑백필름과 자연 조명만 갖춘 채 칠레의 새로운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아옌데의 죽음 이후 구즈만과 그의 동료들은 9개월 동안 숨가쁘게 교차하는 칠레의 현대사를 담아 6개월의 밀반출 끝에 쿠바로 망명한다.

수많은 민중들과의 인터뷰, 선동적 연설, 뜨거운 지지와 함성, 수만명의 행진, 군대와의 대치, 전투가 교차되고 반복되는 <칠레전투>는 6년에 걸친 편집 작업 끝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 레지스탕스(Rezistans)
아이티·미국/ 1997년/ 감독 캐서린 킨/156분/ 다큐멘터리/ 컬러

아이티인들은 오랜 착취와 탄압을 견뎌온 사람들일 뿐 아니라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노예혁명을 성공시키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을 세운 혁명의 전통을 갖고 있기도 하다.

<레지스탕스>는 아이티의 노예혁명 역사를 작품의 전반적인 정신으로 삼으면서 90년 이후 아이티의 정치 상황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티 해방신학자이며 민주지도자인 전, 현직 대통령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와 그를 지지하고 함께 일한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 앙트완 이지메리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을 큰 축으로 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만행을 파헤치고 증명하기 위해 노암 촘스키 교수 등 미국의 진보적인 인물들의 인터뷰를 꾸준히 교차시키는 식이다. 3년여의 제작 과정 중 <레지스탕스>는 이지메리가 시위현장에서 암살당하는 최후를 담기도 했다.

<레지스탕스>의 성과는 아이티의 독립투쟁을 지지하고, 미제국주의의 속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등 날선 정치의식을 보이면서 아이티의 춤과 음악, 강렬한 풍광을 다양하게 포착해 작품에 녹아들게 했다는 점이다. 16mm 필름과 비디오 캠코더를 번갈아 사용한 이 영화는 아이티의 강렬한 풍광과 민중의 모습 등은 필름으로, 민주화 투쟁현장이나 이지메리가 살해당하는 부분은 비디오로 촬영해 다큐멘터리의 회화적 아름다움과 현장감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는 점 또한 현명한 제작 방식으로 보인다.

빈곤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아이티인들의 현실이 2시간 30분 동안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 작품은 서구인이 제작한 것이지만 서구적인 거만함이 없는 귀한 다큐멘터리다.


■ 칠레 : 지울 수 없는 기억
1996/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52분/ 다큐멘터리/ 컬러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의 찬사를 받은 작품 <칠레전투>는 불행히도 작품이 완성된 후 23년이 지나도록 칠레에서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었다. <칠레전투>의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역시 그 이후 칠레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로부터 23년 후인 1996년, 칠레에서는 땅 속에 묻힌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기운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이 때, <칠레전투>의 상영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빠질 수 없는 작업이었다. 마침내 구즈만 감독은 <칠레전투>를 들고 칠레에 돌아가 상영에 성공한다. 카메라는 이 역사적 장면을 담아 <칠레 :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치열했던 시대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젊은 날의 자신과, 고문과 실종으로 사라진 동료들을 화면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칠레전투>를 감상하기 전과 그 후, 젊은이들의 반응이다. 민중연합정부와 그 투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를 칭송하는가 하면 아엔데를 비판하기조차 한다. 그러나 <칠레전투>를 보고난 후 그들은 흐느끼며 말도 채 잇지 못한다. 실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실 전달의 힘을 절감하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