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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무너지는 대학자치

언론표현활동 등 기본권조차 못지켜


텔레비젼에 비치는 요즘 대학의 모습은 강호동이 각 대학을 찾아다니며 놀고 즐기는 즉흥적인 ‘캠퍼스 영상가요 쇼’ 뿐이다. 그러나 96년부터 이어진 노골적인 학생운동 탄압으로 학교 밖에서는 학생간부들이 수배되어 쫓기고, 안에는 학생자치활동의 일거수 일투족이 학교 당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 대학사회의 현실이다.

‘학부제로 통합하지 않으면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교육부의 지시이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아래 학과 통폐합을 통한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전국 각 대학은 이미 ‘직업일꾼’을 양성하는 훈련소로 바뀐지 오래고, 그 속에서 캠퍼스이용규범 확정, 학생 야간 출입통제, 학내 풍물연습금지, 학내언론 탄압 등의 조치가 뒤따르고 있다.


학부제가 낳은 폐단

우선, 학부제의 도입과 함께 ‘민주주의의 도장’ 이라는 대학사회의 기능은 사라져 가고, 대학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 또한 뒷걸음치고 있다.

문예창작과와 생활체육학과를 통합한다는 숭실대에서는 앞으로 글쓰러 왔다가 운동장에서 체력단련을 하는 장면이 심심치않게 연출될 전망이다. 또 숙명여대는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동복지학과와 의류학과를 일방적으로 통합해 1학년 2~3백명이 같은 수업을 받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속에서 선후배간의 ‘정’은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극에 달해 삭막한 입시학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숙명여대 교무위원회는 ‘학생회칙’ 을 쥐락펴락하며 학생활동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학교측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총학생회에 한 푼의 학생회비도 지원하지 않아 학생들 스스로 회비를 직접 걷는 형편이다. 심지어 총학생회사무실의 전등조차 학교에서 달아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자율활동 공간, 점차 소멸

또 서울대에서는 캠퍼스이용규범이 지난 8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이 규범은 면학분위기조성을 이유로 △도서관 앞 스피커 사용금지 △외부단체 주도 집회 등의 장소사용 사전허가 △플래카드 및 대자보 실명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학생들이 “학생자치 행사나 사회, 정치적인 면을 억압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학구조조정이후 본격화된 이런 흐름 속에 항공대는 학교의 물품파괴나 인명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학생회관 야간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경북대는 9월부터 대학의 저항성을 상징하는 풍물연습, 풍물공연과 집회때 앰프 사용, 야간기숙까지 금지해 학생들의 반대서명운동을 불러왔다.

대학별로 학내언론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하다. 올 3월초 동덕여대 학보 는 대통령 취임을 맞아 특별사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양심수 석방운동에 대한 기사와 광고를 게재하려 했다. 그러나, 주간교수의 검열에 의해 양심수 광고가 삭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인하대신문은 학교측이 “1면에는 홍보기사를 싣고, 재정상 격주간발행 체제로 바꾸라”고 지시함에 따라 지난 8월 24일자 개강호부터 한달 가까이 발행중지사태를 맞기도 했다.

인하대신문사 편집국장 이용욱 씨는 “사회비판기능을 견지해야 하는 대학신문을 단순한 학교홍보지로 전락시켜, 격주간으로 발행하겠다는 것은 독자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며 기자들의 자율권과 편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덕성여대에선 학내에 붙여 있던 'IMF 재협상’ 대자보가 누군가에 의해 찢겨진지 오래고, 동국대 대자보판에 붙은 시국관련 대자보나 플래카드는 2-3일만 지나면 수상한 사람에 의해 찢겨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자치권을 점차 상실해가는 대학사회에서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대학인 스스로의 권리의식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