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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10월 단상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10월의 지지 판도가 대통령 선거일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해서 여야 후보들 모두 지지율을 높이기 위하여 안간힘이다.

후보들마다 매일같이 전국적 또는 지역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들을 공약으로 내어 놓고 있다.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바 있고, 입법부 우위의 의회민주주의를 골간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특별히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막강한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진정한 종복으로서 어떤 사람을 뽑느냐 하는 문제가 여타의 국가적 행사보다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라고 총선 후 진보적인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함으로써 선거운동 기간보다 더 국민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같은 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헌법은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취임시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키겠다는 선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쏟아 붓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의 공언을 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무슨 금기사항이라도 되는 듯이 말을 삼가고 있다. 유엔은 1995년 각 회원국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National Human Rights Institue)를 설립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한 바 있다. 국가가 예산을 대는 정식의 기구로서 발족하여 국회, 시민단체, 학계등이 협력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라는 취지이다. 현재의 대통령후보들중 이를 제대로 아는 후보가 있을까.

10월은 “영화의 달”이라고 한다. 국민주권주의를 압축하여 말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영화에 차용하여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이라고 거창한 표어를 내세우며 10월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2회 “인권영화제”도 지난달 말부터 ‘이틈에 끼어’ 개최되었다. 그러나 10월이 시작되자 마자 각종 상업주의 영화가 일제히 현란하게 신문지상을 장식한 이면에서 인권영화제는 철저하게 외면되었다. 또 내용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한 할리우드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버금가는, 아니 일체의 상업성을 배격하고 인간의 존엄성 고양에 목표를 둔 까닭에, 그리하여 휴매니즘의 구현에 관한한 그 이상의 예술적 표현이라고 할 여러 인권 영화들이 “자유 정신”이 숨쉬는 대학에서의 상영조차 공식적으로 거부되고 급기야는 경찰의 압수, 수색까지 인내해야 했다. 이런 현실에서 대통령후보들에게 인권문제를 언급하라함은 지나친 사치일지 모른다.

한편 사람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의 특성이 티브이와 라디오, 신문 등에 의한 토론회가 중심이 됨으로써 과거 어느때보다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후보들의 면면을 잘 알게 됨으로써 보다 올바른 선택을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토론회가 빛좋은 개살구인 곳이 있다. 바로 감옥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을 가두어 두는 모든 장소를 총칭한다). 40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한 김선명씨보다는 짧은 기간인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은 한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의 척도를 알기 위해서는 감옥을 보라고 말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재판 받은 모습이 세계적인 방송망을 탐으로써 뜻밖에 한국에서의 미결수의 처지를 세계인에게 또렷하게 각인시킨 연전의 공판때로부터 역산하여 30년이 훨씬 넘은 1962년 10월 15일의 반역죄 공판에서 만델라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전통적인 코사족 표범 가죽 “카로스”를 입고 출두하여 동족의 긍지를 높였다.

한가지 더 예를 들면 최근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학생을 변론한 일이 있다. 약혼녀와의 면회가 되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어디서 들었는지 동거인이라고 하면 면회가 된다고 하여 주민등록을 약혼자의 거주지까지 옮기는 수고를 하였으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마당에 재소자가 올바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티브이 시청이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한 들 누구하나 귀 기울일 것인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18조는 아예 “금고이상의 형의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자”, 즉 기결수에 대하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형사책임과 참정권의 혼동이다. 다가오는 12월에 선거권을 행사하려는 사람은 행여 음주운전으로 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대통령을 뽑는 일을 큰 기대와 희망을 가져다 주는 국민적인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에게는 영영 불가능한 일일까. 남은 선거운동기간만이라도 인권에 관한 건설적인 공약이 나오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석태(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