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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주한미군에 의한 평택 에바다 농아원생 성폭행 사건


나이 어린 농아 학생들이 배가 고파 동네 가게의 빵을 훔쳐먹고 개밥그릇에 담긴 라면을 주워 먹는곳. 재활이라는 명분아래 강제노역을 시키고 그 임금마저 횡령하는 학교.

이 이야기가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살고 있는 바로 이땅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기도 평택 에바다 농아원. 이곳은 농아원생들의 피맺힌 한들이 멍울져 얼룩진 곳이다.

에바다 농아원 최성창 이사장과 그 일가는 에바다 특수학교와 농아원,복지관의 각종직책을 모두 친인척의 이름으로 올려 공금을 횡령했다. 졸업한 학생이나 사망한 학생을 정리하지 않고 농아학생들의 주민등록증을 이중으로 만들어 일년에 13억이 넘는 지원금을 빼돌렸다. 농아자 70여명을 강제로 해외 입양시켜 대가를 착복 하였다.

96년 11월 27일 강제노동과 학대에 견디다 못한 농아원 학생들은 최성창 이사장의 퇴진과 시설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하였다. 12월 원생들이 집회를 주도하던 어느 날 농아원 직원이 학생들의 집회참여를 가로막으며 한 학생에게 "넌 에이즈검사부터 해봐야 한다. 미군 때문에 병원 다녀온 주제에 어딜 나서냐"라고 말하면서 미군의 농아원생 성폭행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개밥그릇의 라면을 주워 먹는 곳

지난해 6월 미성년자인 이수철(가명,당시 15세)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윌리암스 약 에스 일병(33세,미제7공군 소속)을 따라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로 들어갔다. 이 군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자였다. 그는 평소 햄버거를 사주며 부대 구경시켜 주었던 윌리엄스를 따라나섰다. 윌리엄스는 수화를 할 줄 아는데다 마술쇼를 보여주기도 하여 원생들에게 인기있는 미군이었다. 그 날 이 군은 부대내 윌리엄스의 숙소에서 자게 되었다. 이 군이 침대에 눕자 잠시 후 윌리엄스는 이 군의 속옷을 벗기고 그의 아랫도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 군은 싫다고 저항했으나 덩치가 큰 윌리엄스의 힘을 뿌리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어 윌리엄스는 이 군을 강제추행하였다. 20여분 남짓한 시간은 농아자인 이 군에게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주었다.

이 군의 끔찍한 모욕은 다른 원생에게도 이어졌다. 햄버거를 사주며 자선을 가장한 윌리엄스의 추악함은 지난해 9월28일 또다시 나타났다. 김민호 군(가명,당시12세)과 오철식 군(가명,당시12세)을 같은 방법으로 꾀어내어 자기 숙소로 데려갔다. 윌리엄스는 어린 농아학생들에게 목욕을 하라고 시켰다. 윌리엄스는 목욕을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가 김 군에게 바닥에 엎드리라고 시키고 나서 성폭행하였다. 이어 윌리엄스는 오 군을 똑같은 방법으로 짓밟았다. 10월 27일 김 군을 다시 불러내어 또다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자선을 가장한 추악함

지난 3월 12일 2시 수원지방법원 208호에서 준강제추행 및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윌리엄스 일병의 1차 재판이 열렸다. 윌리엄스는 변호인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김 군이 나에게 함께 샤워할 것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다. 그러자 김 군이 오 군과 함께 샤워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손님을 소홀히 대접하는 것 같아 그들과 함께 샤워를 했다. 그러자 김 군이 계간을 하자고 하였다. 나는 어린 아이들의 말(수화)에 충격을 받았으나 김 군의 제의를 허락했다. 그러나 김 군이 나의 항문에 성기를 삽입한 것이지 내가 그들의 항문에 성기를 삽입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원생들을 검진했던 송탄의 병원 의사는 "당시 경찰이 원생2명을 데려와 그들의 항문을 치료해 달라고 하였다. 경찰이 말하기를 이들 원생들이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군의 농아원생 성폭행 사건이 가져 올 사회적 파장과 농아원의 관리 소홀 문책에 대한 부담이 한통속이 되어 사건은 은폐되었다. 경찰은 초기부터 사건이 기사화되는 것에 심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땅의 안보를 위해 주둔하는 미군이 농아학생들을 성폭행한 엄청난 사건은 거의 신문에 게재되지 않는 조직적인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경찰과 언론도 한통속이었다

사실 에바다재단 비리와 시설관리 소홀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정부가 복지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만 제대로 했어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은 보육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을 보모로 두고 밤 10시면 외부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에바다측은 이를 무시했고 심지어 정식보육사를 채용하지 않고 농아자를 원생들의 보모로 채용하기도 했다. 기숙사 생활은 전혀 통제되지 않고 한밤중에도 바깥 출입이 가능했다.

원생들의 농성이 벌써 백일하고도 열흘이 되어간다. 다음은 원생들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대통령 할아버지 꼭 우리의 눈물 흐르는 호소를 들어주셔서 혹시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 장애인을 도와주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세요."

미군에게 한국여성이 목이 잘려 숨져도 항의 한마디 못하는 대통령, 국가 경쟁력 10% 높인다며 정부 총예산의 3%밖에 안되는 복지비를 10% 줄이라고 호통치는 대통령! 그는 과연 농아원생들의 피맺힌 절규를 아는가?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을 받았던 그 부끄러운 손은 어디에 있는가!

주한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정유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