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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이렇게 멋있는 안기부

"나찌의 '게슈타포'와 구 동독의 '슈타지'는 독일 사람들에게 아주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 국가 내·외의 안전보장을 동시에 담당하며, 정보기관의 권한은 물론 수사권까지도 갖고 있는 기구는 민주주의를 압살해버리기가 십상입니다."

베를린에서 날아 온 마르틴 구차 교수는 자신의 발표를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었다. 지난 2월 27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공안정보기구 개혁에 관한 국제심포지움. 이 분야의 전문가인 네사람의 외국인과 14명의 한국측 발제·토론자들은 여러 나라의 '안기부문제'를 철저히 까발려 나갔다. 토론 마다 통쾌했고 변호사회관 강당은 쾌적했다.

"미국에서 CIA는 물론 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가진 FBI도 의회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감독됩니다." ('음, 그래야지…')
"독일의 '안기부'인 헌법보호청은…" ('고것 참, 음….')


"아빠아, 여기예요!"

깔끔하지만 별로 보잘것 없는 건물 현관에서 딸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 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직장에 들어온 지 벌써 2년이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된 것이 딸은 늘 자랑스럽다.

"아빠, 저희 안기부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은 특별히 제가 안내해 드릴께요." 접수카운터 주위는 견학 온 초등학교 꼬마들로 북적거린다.

복도 양쪽은 모두 100% 유리로 되어 있어 안기부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민원실예요. 저 민원인들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혹시 있으면 보여달라고 찾아 온 시민들예요." "그런 걸 다 보여주냐?" "그럼요. 프라이버시의 권리와 알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잖아요. 저도 안기부에서 철저히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구요." "흠…."

유리창 너머로 복잡한 기계가 작동하고 있다. "여기는 주 전산실. 저 대형 컴퓨터는 국내에서 두 대밖에 없는 고성능예요. 정치, 군사, 경제, 산업, 첨단과학기술, 국제범죄조직 등등 복잡한 세계의 온갖 정보를 '슬쩍'해 왔다가 처리해야 하니까 저런 대용량 컴퓨터가 동원될 만도 하죠. 저쪽 복도 맞은 편 정보분석국은 안기부 최고 두뇌들의 집합체죠." 어느새 주위에 대형 컴퓨터를 구경하려는 초등학교 꼬마들이 몰려 왁짜지껄 정신없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아빠, 이 구역은 동아시아국예요. 이쪽에서 순서 대로 중국과, 일본과, 베트남과, 아 참, 저쪽에 북한과가 있네요. 북한 정보기관과 우리 안기부 관계는 한마디로 공조관계죠. 우리나라 분단을 자기 나라 국가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모든 강대국들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한…." "…."

"아빠, 아빠, 이쪽으로 오세요. 제1회의실에서 간부들이 회의 중예요. 보세요. 저 뚱뚱하고 검은 뿔테 안경 쓴 분이 부장님예요. 재작년 안기부장 선거에 당선되셨어요." "안기부장 선거라…?"

"네. 과거처럼 정치권과 유착하는 일이 없도록 직접선거로 뽑히죠. 아빠도 다음에 출마해보세요."

"얘가 원!" "아녜요, 아빤 인권운동 경력이 10년 이상이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나 같은 '전과자'가 무슨…. 근데, 뭐냐 거시기, '취조실'도 구경할 수 있느냐?" "네에? 취조실요? 왜 안기부에 취조실이 있어야 하죠? 모든 범죄수사는 검찰과 경찰이 하는 건데?" "아 참, 그랬지 그러니까 수사권이…." "네에, 없어진 지가 옛날예요. 선배들 얘긴데 1997년에 완벽한 수사권을 가지려는 안기부 기득권층과 수사권을 일부라도 제한하려는 국민들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대요." "오냐, 그랬다." "그 때 국민들이 정신차리고 열심히 싸워 준 덕분에 안기부의 민주화가 계속 진행되어 오늘날의 영광스러운 안기부가 있게 되었다는군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안기부의 대명사는 '밀실수사' '고문' '용공조작' 따위였겠죠?" "그래 그래." "아빠는 최근의 여론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아세요?" "어떻게?" "'안기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가 72.8%, '안기부 더 개혁해야 한다'가 14.6%, '더 이상 개혁이 필요 없다'가 74.2%예요. '친근한 느낌이 든다'는 61%, '무서운 느낌이 든다'가 3.3%구요."(*) "허허 그으래?, 박수 쳐주마 이렇게. 짝짝짝. 허허어, 좋구나. 우리 딸 자랑스럽…"

짝짝짝…. 박수 소리에 놀라 단잠을 깨어보니 곽노현 교수의 발제가 끝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 딸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 연말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안기부법의 재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안기부와 신한국당 입장은 재개정 절대불가라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안기부를 후손에게 넘겨 줄 수 있을 것인가?

(*) 이 여론조사 수치는 최근에 한길리서치에서 한 여론조사 수치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서 준 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