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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해설> 신귀영 씨 사건 대법원 원심파기로 본 재심제도

적법절차 밟지 않았으면 재심사유 해당


신귀영 씨 사건의 경과

신귀영 씨는 80년 2월25일, 서성칠 씨 3월17일, 신춘석 씨 3월24일 각각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연행되었다. 이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80년 5월3일이었다. 신귀영 씨가 연행된지 68일만이었다. 이 기간동안 이들은 불법구금 당한 것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 고문, 통닭구이, 비녀꽂이, 잠 안재우기 등의 고문을 당해 결국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대로 자백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경찰은 증인들에 대해서도 여러 날 동안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가해 이들마저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대로 자백했다.

경찰은 일본에 거주하는 조총련 간부인 신귀영 씨의 친형이고, 서성칠 씨의 사촌매형, 신춘석 씨의 사촌조카인 신수영 씨를 만나 지령과 돈을 받고 국가기밀과 군사기밀을 탐지․보고하였다는 자백이 나오게 된다. 이에 따라 이들은 재판에서 15년형, 10년형을 선고받았고, 서성칠 씨는 89년 대구교도소에서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했다.

「천주교조작간첩대책위원회」는 94년 11월16일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재심청구 8개월만인 지난 7월 부산지법에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1,2심과 대법원 결정 비교

부산시경에 불법연행된 신귀영 씨 등은 80년 4월10일까지 진술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이들이 연행된 날로부터 19일 내지 47일 동안 조사된 진술서나 신문조서가 전혀 없다가 일제히 자백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이후로 세세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산지법과 고법의 재심개시 결정도 이러한 사실들을 들고 있다. 아울러 핵심증인인 신수영 씨가 “자신은 조총련의 간부도 아닐 뿐더러 조총련 간부로 만난 것이 아니라 형제의 정으로 만났다”며 재심이 열릴 경우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하겠다는 내용의 공증진술서를 새로운 증거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2조 제5항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라고 하는 것은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발견되었어도 제출 또는 신문할 수 없었던 증거로써 그 증거가치에 있어 다른 증거들에 비하여 객관적인 우위성이 인정되는 것을 발견하거나 이를 제출할 수 있게 된 때를 말한다”며 부산지법과 고법의 재심개시결정이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해 증거가치가 좌우되는 것으로 재심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신수영 씨의 진술서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고, 박용규 씨 등의 증언 번복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심의 폭 넓혀야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옛날에는 새로운 증거가 제출될 때만 재심을 허용했으나, 최근에는 원판결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의 측면에서 재심으로 허용하고 있다”며 대법원이 과거의 판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그렇잖아도 재심의 문턱이 높은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와 같은 입장이라면 인권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재심제도가 아무 소용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미국 등에서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사 받고 재판 받지 못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심사유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번 대법원의 결정을 반인권적인 결정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재심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 문턱을 낮추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 인권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특례법을 제정해 재심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한편,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이 환송심에서 법원에 확실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