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킹평화상 수상과 안기부 프락치공작수사

1월26일 오전. 삼청동 청와대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목사 비폭력평화상을 받는 행사가 치뤄졌다. 미국은 암살 당한 킹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추모할 할 정도로 그분에 대한 경외심이 대단하다. 그렇게 저명한 민권운동가를 기리고자 설립된 센타에서 제정한 비폭력평화상을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이 받는다!

과거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였던 군출신 대통령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보잘 것 없는 민초들도 덩실덩실 어깨 춤추며 한바탕 잔치라도 벌여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왜 이 내 어깨는 이리도 무겁기 한량없고, 오히려 가슴에선 천불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동안 군사독재정권에서 길들여진 무조건적인 권력자에 대한 반감 탓인가. 아니면 사촌이 논사면 배아프다는 좁은 속 때문인가.

그런데 같은 날 축하연이 진행되는 시간.

강건너 서초동 대한변호사회관에서는 이상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변협회장과 인권위원장이 안기부프락치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조금 전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신장에 대한 공로로 평화상을 수상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발표된 첫번째 간첩사건이 안기부에 의하여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설마 군출신도 아닌 민주화투쟁에 혁혁한 전과를 올리신 우리 대통령께서 취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발표된 사건이 조작되었을리야!

그러나 나는 독일 베를린에서 양심선언한 전 안기부 공작원(프락치) 백흥용 씨를 만나 조사를 하고 온 당사자로서 조작사실에 대하여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안기부장은 국회에서 백흥용을 안기부에서 채용하였던 것과 백흥용이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안기부 직원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이날 변협의 기자회견 2달 전에도 민변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하였던 일이 있다(물론 일부 언론기관들만 보도하였지만).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극적인 장면이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강북에서는 흑인 민권운동가로 암살까지 당한 목사님의 미망인이 현직 대통령에게 비폭력평화상을 시상하고 강남에서는 대한변협이 대통령 직속기구인 안기부에서 무고한 국민 더구나 처녀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작하였다는 기자회견을 하다니. 이럴 수도 있는가?

서울 하늘 아래 동시에 일어난 어느 한 쪽의 일은 틀림없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리 나쁜 백성의 단순한 생각일까? 똑같이 관심을 갖고 취재한 언론기관들은 어떻게 보도하였을까?

각 방송사와 각 일간지들은 앞다투어 대통령의 수상소식과 킹목사의 생애를 보도하였다. 나아가 김대통령의 단식투쟁 당시 주치의와 YH사건 당시 여성노동조합장의 과거 그 시절 회고를 곁들인 건배장면까지 보도하였다. 그리고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무대에 나와 과거 민주화투쟁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불렀던 선구자와 아침이슬을 열창하는 장면까지도. 그런데 대한변협의 안기부 공작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은 극히 일부 언론을 빼고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두달 전 민변 등이 가졌던 기자회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후 취재하였던 기자들은 만나면 한결같이 꿀먹은 벙어리다. 왜일까? 예전 군사독재시절처럼 보도통제를 당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과연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비폭력평화상을 탈 수 있을 정도로 이 땅에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의 신장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는가?

단언컨대 "아니올씨다!"

법원조차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국가보안법을 남용한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양심수가 무려 460명을 넘는다. 핵! 핵! 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안보불감증"이라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만들어 국민들을 협박하다가 압구정동등 강남에서 돈많은 국민들이 라면을 사재기하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전쟁은 안 일어난다고 안심시킨 당사자는 누구인가.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하던 상대방이 사망하자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뚜렷한 입장조차 밝히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던 사람은 누구인가. 70 고희를 넘긴 목사님이 적어도 정상회담을 하자던 상대방에게 조의를 표시하여야 한다며 택시 타고 조문 간다고(?)하자 덜커덕 구속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제3자 개입금지 등 노동악법을 개정하라는 유엔의 권고에는 귀머거리가 된 자는 누구인가. 10만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파렴치한 기업주들에게 팔아 넘긴 신종 노예상인과 이를 눈감아주는 자는 누구인가.

상반된 성격이 두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 한국인권단체협의회는 킹여사에게 김영삼 대통령의 수상에 대한 항의편지를 전달하였다. 이 편지는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모여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이 편지를 킹여사와 그 아들, 그리고 킹센타의 관계자들이 읽고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지하의 킹목사님은 이번 시상에 대하여 어떤 심정이실까?

현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아니 그보다 더욱 권위 있는 인권상을 타는 날 두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치기를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