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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8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고문희생자들, 아직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호소해본 적이 있는가?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까마득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기어오르게 되는 힘, 그 힘이 어느 순간부터 강하게 모아지는 경험, 그리고 손잡아주는 이를 만나는 감동···.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은 이런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정신병원 의사가 "아이큐 130이 넘는 우수한 두뇌와 감성이 풍부하고 여성적인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으며 또한 필력이 뛰어나 사회에서 한몫을 단단히 할 사람"이라고 평한 젊은이가 있다. 현재 고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청년의 과거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회의 어두운 곳을 사랑하고 돌볼 줄 알았던 한 건강한 젊은이에게 휘둘러진 '잠안재우기,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이라는 이름의 칼날과 맞선 참혹한 전쟁이 있었다.

그가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후 그를 만나보았을 때 자신이 알고 있던 문국진 씨(34세)가 아니어서 너무나 당황하고 "고문이란 것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구나"하고 뼈저리게 느꼈다는 윤연옥 씨(문극진 씨의 부인)는 그의 고통을 져버릴 수 없었다.

어렵지만 소중하게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겪어내리라 생각했던 고통은 예상보다도 훨씬 큰 것이었다. 딸 해인이를 임신한 7개월째 되던 때, 생후 7개월 되던 때를 비롯하여 문씨는 발병과 입원의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딸을 안고 울었고, 끝까지 문씨와 함께 하겠다는 결심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품에만 안고 신음할 문제가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강인한지 그놈들에게 꼭 보여줘야만 한다. 우리 가정을 꼭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강하게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문제가 절실했지만,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서, 혹은 자포자기 상태로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윤연옥 씨의 분주한 발걸음 속에 '문국진'과 묻혀진 고문의 상처들이 여론화되기 시작했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소송도 준비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모여 지난 93년 10월 13일에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을 발족하였다. 박정기(고 박종철 열사 부친)씨를 대표로 하여 부대표 4인, 실무를 담당하는 7인, 40여인의 후원회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회원들은 신병 치료와 법정 투쟁 등을 위한 모금활동과, 고문으로 인한 정신분열에 관한 자료수집과 영문자료 번역, 고문피해 사례 수집 등을 위해 몸으로 뛰는 일등을 기꺼이 돕고 있다.

이 모임의 상근자가 된 윤연옥 씨, 문씨의 대학 동기들이 생활비를 담당하기로 하여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활동 초기인 지금,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고문후유증에 대한 의학적 자료를 비롯한 고문에 관련된 자료가 국내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국의 관련단체와 관계를 맺고 자료를 구해야만 하며, 자료를 구하더라도 번역하고 분석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크다. 앰네스티 아시아분과 담당자가 내한했을 때 면담을 통해 고문후유증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후 연락을 취하고 자료를 받고, 소식지를 영문화하여 발송하는 등의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15일에, 고문행위 및 고문후유증 발병 후 구호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경제력 상실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제기하였고, 지난해 12월 18일에 소송서류와 청량리 경찰서의 책임회피의 주장을 담은 답변서가 제출된 1차 제판이 있었다. 아울러, 29일에 고문피해사례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국회 청원을 냈었다.

문제가 되는 어려움은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고문의 특수성으로 인한 증거의 부족과 시효가 지났다는 점(고문은 시효가 없다는 국제법에 의해 소송을 제기), 당시 목격자인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세세한 사항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점등이 있다.

그동안 고문피해 사례를 수집해뒀고, 그 과정 속에서 고문 유형의 다양성과 심각성을 새삼 발견하며 고문 사례 보고(1월 14일, 민주열사 박종철 7주기 추모식)도 하게 되었는데, 그 피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고문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이 크고, 단순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문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유엔고문방지조약에의 가입 등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그간의 활동을 통해 얻은 보람을 윤연옥 씨의 말을 빌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문씨의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 큰 심적 괴로움이 되지만 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남편의 고통에 대해 이전보다 더 절실하게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초기에 가졌던 의구심(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함께 해줄 수 있을까)이 함께 해주는 분들에 대한 감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개인적인 심정에서 시작했지만 고문의 문제를 깨달으면서 인권문제에 대해 배우게되고,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을 알게 됐다는 것 그리고 다른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놓고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과 그 역할을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이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이다.

"우리의 삶과 사랑이 얼마나 강인한가, 소중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문의 썩은 냄새를 치유의 향기로 바꿔나가기 위해 오늘도 많은 이들이 문국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운동 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