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④ 고문, 가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또는 모욕적인 처우와 형벌

합벅적 '조사'와 '고문'사이에 구분선 있을 수 없어


아직도 ‘고문’을 얘기하는가? 춘향이가 곤장 맞던 적 얘기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고문은 인간성에 반하는 주요범죄 중 하나이며, 세계곳곳에서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있다.

유엔고문관련 특별보고관은 95년 활동보고서에서 상당한 고문의 위협에 처한 4백10명에 관련된 1백13건의 긴급호소문을 43개국 정부에 전달하였고, 7백50여건에 관하여 48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번 달 그리스 아덴에서 열린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고문에 관한 국제회의’의 참석자들은 구타와 불로 지지는 고문이 가장 보편적인 고문형태로 남아 있을 뿐더러, 깨끗하고 향상된 방법이라는 이유로 전기고문과 잠안재우기, 고통스런 자세를 장시간 취하게 하는 고문(position torture)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랍인권조직의 대표자는 “현대의 기술 덕분에 정부는 불처벌 속에서 행동하고 있고, 이 점이 고문을 멈추려는 우리의 노력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며, 많은 정부가 인권활동을 억누르는 방법 개발에는 더욱더 창조적이 되어갈 뿐더러 고문방지 수단을 취하기보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에 더 큰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이 점에 있어선 어느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95년 1월 고문방지조약의 당사국이 된 우리나라는 아직도 안기부 등 수사기관의 변호사.가족 접견금지, 잠안재우기, 집단구타 등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소위 인권선진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엔특별보고관은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 등에서 비유럽인.인종적 소수자.망명처를 구하는 난민들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 부당한 총격과 살상에 경적을 울리고 있다. 영국은 전기충격 곤봉과 다리족쇄의 수출로 자국 인권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미국은 경찰의 과다폭력으로 매년 시당국이 수백만 달러의 배상금을 피해자에게 물어주고 있으나 책임자가 형사처벌된 예는 드물다. 그 피해자들 또한 대다수가 인도적 소수자이다. 이스라엘은 94년 5월에서 95년 5월 사이에만 6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을 체포하여 상당수를 변호사접견 없이 30일까지, 가족면회 없이 1백40일까지 구금하면서 눈을 가리운 채 구타하기, 잠안재우기, 장시간 족쇄 채우기 등을 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고문 또한 심각하여, 94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은 앞머리에서 우선적으로 이들에 대한 고문문제를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심각한 고문은 체포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강간이다. 한 동티모르 여성은 서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체포되거나 매맞는 것이 두렵지 않다. 다만 강간이 두려울 뿐이다.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다”고 울먹이고 있다. 9살, 10살난 아동이 독방 수용되거나 부모나 친척의 소재를 캐기 위해 고문당한 예도 상당수이다.

이런 우울한 목록들을 접어두고 보면, 어느 정부나 자국법에서 고문과 여타 가혹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을 뿐더러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관련 국제조약의 당사국이다. 세계인권선언 5조(아무도 고문이나 가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또는 모욕적인 처우나 형벌을 받지 않는다)의 정신을 따라 국제사회는 75년 고문방지선언, 79년 법집행 공무원의 행위윤리규정, 82년 의료인 윤리규약, 84년 고문방지조약, 88년 여타의 구금 또는 수감된 자들을 위한 보호원칙 등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에나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합법적인(?) 폭력은 용인할 만한 것으로 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즉 합법적인 ‘조사’와 ‘고문’ 사이에 뚜렷한 구분선이 없기 때문에 고문의 문화는 한 사회에서 얼마든지 쉽게 자라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통제와 가정․학교에서의 가혹한 훈육이 당연시되는 문화적 전통을 가진 곳에서는 번창할 수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경찰서와 감옥에서의 잔인성이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신이 제공한 ‘면허’에 의해 공무원이 저지른 고문에 대해 당연히 책임을 져야할 뿐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인권침해를 저지할 의무, 사적 개인 간에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가혹행위로부터 보호할 ‘수평적 의무(horizontal signiticance)’ 또한 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고문반대 운동가들은 ‘방패’가 아니라 ‘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방지와 강제를 위한 효과적인 절차규정이 있어야 하며, 고문관련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보상과 치료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고문방지위원회는 각국 정부의 백지상태의 답변과 회피를 우려하는 한편 효과적인 ‘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92년부터 유엔고문방지조약에 따른 선택의정서를 준비중이다. 여기서 수록할 만한 것은 공권력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했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어느 곳에나 유엔대표가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는 규정이다. 위원회의 95년 회의에는 ‘보편 권한(universal jurisdiction)’(국제법상의 범죄가 어디에서 발생했건 간에 그 범죄혐의자가 그 영토 내에 있을 때 어느 국가든 재판해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을 들어 94년 네덜란드를 방문한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을 소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를 추궁하기도 했다.

한편 요원한 문제이지만 영속적인 국제사법재판소를 만들기 위한 노력 또한 진행형이다.

“그것(고문)을 받아들일 때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내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다”는 어느 고문피해자의 상처는 우리 사회에 돋는 아프디 아픈 종기일 것이다.

【류은숙 인권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