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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서울시 주요 보도 점용행사 및 집회 관련 점용허가 업무 매뉴얼에 대한 의견서

11월 서울시는 '주요 보도 점용행사 및 집회 관련 점용허가 업무 매뉴얼(아래 점용허가 업무매뉴얼)'을 만들어 25개 자치구에 전달했다. 서울시는 각종 행사와 집회에 의한 보도 점용이 과도하다고 판단해 물품의 사전점용허가를 강화하고 이를 준수치 않을 시에는 도로법에 따라 조치토록 한다고 밝혔다.

점용허가 업무매뉴얼과 관련하여 ‘집회 시위 제대로 모임’(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쌍용차 범국민대책위,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선 돌려차기,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희망을 만드는 법 등의 단체와 개인들이 집회시위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장하기 위해 모인 곳)은 12월 18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아래와 같이 의견을 밝히며 서울시에게 점용허가 업무매뉴얼 중 ‘집회관련 점용물 관리강화’를 철회하도록 요구한다.

첫째, 서울시는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따르지 않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의 금지와 더불어 집회에 대한 허가금지를 명시하여 집회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 조항들과는 달리, ‘허가’의 방식에 의한 제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집시법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어 왔음은 국내외 인권단체를 비롯해 유엔인권기구, 국가인권위원회도 수차례 지적해 왔다. 또한 경찰은 어떤 내용의 집회냐에 따라 집회 공간, 시간, 방식을 끊임없이 간섭하고 방해해왔다. 경찰은 집회 때 사용할 물품을 사전에 신고하도록 강제해왔고 신고 되지 않은 물품의 경우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입을 막는 경우도 허다했다. 여기에 더해 차량, 확성기, 입간판, 그 밖에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을 ‘제외한 물품’에 관해서는 구청까지 가서 점용허가를 받으라는 서울시의 주문은 더욱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사전허가’를 부추길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 도로법과 구청의 도로점용허가권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경찰이 규제하는 것도 모자라 구청과 서울시까지 나서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겠다는 발상이다.

둘째, 서울시의 집회방식에 대한 규제는 자의적이며 집회주최자와 참여자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에는 집회할 장소, 시간, 방식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명백하고 현저한 위험이 초래되지 않는 이상, 집회를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낼지는 집회주최자와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이지 행정관청이 나서서 사전에 판단하여 허가할 사항이 아니다.

서울시는 ‘차량, 확성기, 입간판, 그 밖에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은 집회용품으로서 점용허가대상이 아니나 ‘그 밖의 것’은 도로법상 점용허가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서울시는 미신고집회는 말할 것도 없고 집시법에 따라 신고된 집회라 하더라도 천막은 집회용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집회물품에 대한 사전점용허가를 강화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시 도로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서울시의 조치는 매우 자의적이며 집회주최자와 참여자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집회 주최자는 집회에서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한다. 집회주최자의 입장에서 천막은 집회의 내용과 형식을 만드는데 매우 필요하고 유용한 집회용품이다. 천막은 추위, 더위와 같은 날씨로부터 집회참여자들을 보호하고, 음향장비와 같은 고가의 물품을 보관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천막은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오랫동안 집회에 참여하기 힘든 물리적 신체적 연령적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장기간 농성이 불가피한 경우 천막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모일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물품이다. 따라서, 집회용품에 대한 규제는 서울시나 구청이 관할할 사항이 아니며 명백하고 현저한 위험이 초래하지 않는 이상 집회주최자와 참가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야할 영역이다.

셋째,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도록 집회시위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 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집회의 공간·방식·시간은 집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물리적 점유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앞에 서술한 것처럼 집회 공간과 방식은 집회의 표현 형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도로, 인도, 광장은 오랫동안 공적인 공간으로서 시민의 물리적 점유권이 전통적으로 보장되어온 장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집회는 각종 법률과 행정조치 아래 묶여 있다. 대법원이 평화적 집회 보호의 의무를 내세우며, 집시법 상 해산명령 불응죄로 처벌하지 말라고 하자 경찰은 동일한 행위를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고 법원도 기계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구청까지 나서서 도로, 인도, 광장에 도로법, 도로교통법을 앞세워 집회장소와 집회방식을 규제하겠다고 한다. 집시법으로 규제하는 것도 모자라 형법과 행정법까지 동원한 처사는 집회에 대한 이해 부족과 집회에 대해 여전히 불온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국가는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고 널리 퍼지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 저항의 목소리와 행동이 공적 장소에서 전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어 표현자와 청취자는 공간에서 분리·분할되고, 의사전달 방식은 약화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처사를 보면서 근본적으로 집회시위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거대자본이 방송을 독점하고 지식이 권력화 될 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집단적인 저항의 권리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도록 집회시위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 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결론

서울시는 이번 행정조치가 시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심각한 행위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누구와 집회시위를 하느냐는 집회시위 자유의 본질이다. 집회 시위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 자체는 일정한 시공간의 점유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묶는 엉뚱한 법령 적용과 행정조치들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집회시위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점유권을 넓혀야 한다. 점용허가 업무매뉴얼 중 ‘집회관련 점용물 관리강화’를 철회하도록 서울시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