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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파면 1주년, 차별금지법 만드는 페미들의 작당 모의> 후기

 

 

 

 

 

 

 

 

파면 이후 1년, 날이 갈수록 폭주하는 혐오와 억압의 세계를 넘어 광장에 세웠던 평등의 화살표를 우리의 일상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 함께 작당모의 할 페미니스트들이 모였다. 어떤 수식어를 달고 있던 한국 사회를 함께 이루는 페미니스트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함께 만드는 주체라고 자임하는 이들과 한자리에서 만났다.

본 행사를 시작하기 전, 여는 이야기에서는 우리에게 차별금지법이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이야기되어야 하는지를 살폈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페미니스트가 성평등 사회를 향해 함께 외쳐야 하는 의제임을 함께 이야기하며 차별금지법이 현장 투쟁과도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함께 다루었다.

 

페미들의 작당모의, 어떻게?


◇일하는 페미니스트 | 보라(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

◇짜증난 트위터리안 | 향연(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답답한 말벌동지들 | 당근(비상플리마켓)

◇기도하는 페미니스트 | 새말(믿는 페미 활동가)

◇글쓰는 페미니스트 | 심미섭(작가/활동가)

◇여성 폭력 타파하는 페미니스트 | 이제(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정치에 빡친 페미니스트 | 김영우(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활동가)

◇퀴어 페미니스트 | 시엘(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디자인하는 페미니스트 | 김수영(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 황효진(슈퍼스톰) 


 

이어서 위에서 나열한 10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테이블마다 각각의 초대 손님과 함께 하는 모둠토론이 열렸다. 처음에는 ‘나는 ○○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자기소개를 나눴다. 어디 가서 함부로 티내지도 못하는 나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에 대해, 이 공간에서는 당연한 전제로 깔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해방감과 연대감의 맛이 좋았다.

테이블에는 공통질문과 주제별 질문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내가 참여했던 <디자인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제 질문은 “차별금지법에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시민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어떤 디자인과 기획이 필요할까요?”였다. 그러게, 우리는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향해 사람들을 꼬실 수 있을까?

우리 테이블에서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막연하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이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막연한 낙관은 막연한 공포를 없애주지 못하기 때문일까? 차별금지법이 있어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차별금지법에 생기면 어떤 식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테이블 안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디자인이란 결국 서로를 더 직관적으로 설득하는 것, 서로에게 더 공감 가는 말을 꾸려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테이블에 주어진 공통 질문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중요하게 느껴진 키워드는 ‘만남’이었다. 드로잉 워크숍을 하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모여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누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거나 플로깅, 동네 영화 모임, 몸 바꾸기 워크숍, 차별금지‘밥’ 모임 등의 참신하고 일상적인 기획이 쏟아졌다. 초대 손님으로 함께 했던 김수영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활동가는 이러한 만남에 대해 ‘모여서 서로 엔돌핀이 돌 수 있는 활동’이라고 하면서, “꼭 맛있는 밥을 같이 먹는 것,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차별금지법과 정치의 실패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 파면된 지 1년.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존엄과 평등의 언어들이 쏟아졌던 광장을 경험한 정부와 국회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과 성평등 의제를 함구하기 급급해하는 것을 보았다. 광장이 만든 대통령이 광장의 제1의 요구였던 차별금지법을 ‘민생과 경제’, 먹고 사는 문제와 구분 짓는 것을 보았다. 극우들의 토양에 좌파와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억압이 있음을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을 보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윤석열‘만’ 파면된 나라에 산다. 광장에서의 경험과 달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일상을 보내는 이들과 2026년을 살아가며 1년 전을 곱씹어보자면, 이건 분명 무언가의 실패다. 무엇의 실패냐면, 정치의 실패다.

21대 국회에서 끝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채 ‘정치의 실패’를 드러냈듯, 22대 국회 또한 차별금지법을 요구해 온 광장의 목소리를 함구하면서 또다시 ‘정치의 실패’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그때 우리는 분명 존엄과 평등의 사회를 향한 화살표를 세우던 주체들이었는데, 그때의 우리를 ‘응원군’으로만 취급하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광장이 계속될 자리를 빼앗긴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작당모의’는 다시금 페미니스트 동료 시민들과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좋았다.

 

차별금지법 만드는 페미니스트 되기

한편 광장 이후 여성안전 프레임을 씌워 여성의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특히 눈에 자주 띈다. 특히 마음 쓰이던 와중에, 이번 기회를 통해 다양한 페미니스트, 특히 ‘여성폭력 타파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많은 말들 속에서 ‘사실 차별금지법으로 모든 폭력을 저지할 수는 없을 테고,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차별금지법은 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게 해주는 계기이자, 대항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피해자에게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입증 부담과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내게 남았다. 페미니즘을 삶의 양식으로 실천하며 살고 싶은 우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남의 것, 반대의 것이 아니라 기꺼운 우리의 것이다. ‘한 인간이 온전하게,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을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제도 견고하고 신자유주의도 튼실한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 각성하게 되는 것은 내겐 거의 필연, 순리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가난한 와중에 정상 가족에 편입되지 않는 어느 페미니스트가 나이 들수록 신체적·경제적·사회적으로 점차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내게는 머지않은 미래이자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재다. 사는 내내 경험하고 예기치 않은 때에 맞닥뜨리게 될 어느 취약한 순간을 상상한다. 그때에 나와 내 친구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 취약함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억압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가난한 나의 친구가 빈곤을 이유로 거리에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주민이거나 성소수자이거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 계약이 파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란, 이런 바람이 기꺼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사회로 가는 과정이다.

이 시간을 통해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를 바꿀 힘, 희망을 품을 힘은 결국 차별금지법 함께 만들겠다고 기꺼이 나서는 우리에게 있음을 느낀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향해 함께 평등의 화살표를 세우며 나아가려는 우리가 곧 광장이고 희망의 근거다. 가자,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가자, 평등으로!

 

 

페미니스트끼리 모여 ‘작당모의’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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