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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서 시작하자

 

지난 4월 23일 ‘기후정의동맹 참여단체 워크숍’이 열렸다. 2월에 열린 ‘2024년 기후정의동맹 전체회의’에서 올해 기후정의동맹의 주요 활동방향으로 이야기된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의 필요성이 확인되었고, ‘워크숍’을 통해서 이를 풀어보기로 한 것이다. 기후정의동맹이 출범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그동안 기후정의동맹과 함께 숨 가쁘게 달려온 참여단체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어떻게? 공공적으로!

기후정의동맹은 출범과 함께,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를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는 공공적, 민주적, 생태적 에너지 체제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누구나 ‘기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들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에너지원만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으면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재생에너지 확대조차도 매우 더딘 상황이다. 왜 그럴까?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기후정의운동의 답이다.

미국, 중국, 유럽을 중심으로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생산은 급격하게 늘었다. 언론과 학계는 이들 지역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표적인 에너지 전환의 성공사례인 것처럼 알리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에너지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바로 이 늘어난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을 재생에너지가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생에너지는 확대되었지만, 화석연료 소비 역시 늘어나고 있다. 즉 국가의 보조를 통해 시장경쟁력을 갖춘 재생에너지 상품은 전체 에너지 시장의 크기만 키웠을 뿐, 정작 필요한 화석연료 축소와 통제, 에너지 전환에는 실패한 것이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공공이 직접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확대와 전환’은 당연하게도 화석연료, 핵발전의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이며, 시장경쟁이 아닌 공공/국가의 직접 통제와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 중요한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특히 에너지 생산과 공급의 대부분을 국가가 담당하는 한국의 경우, 공공/국가가 앞장서서 ‘화력-핵발전 에너지 체제’를 만들어왔고 이를 통해 자본에게 ‘저렴한 에너지’를 대량 공급해왔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이다.

이 지점은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 매우 중요하다. 즉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맞서 싸워야 하는 지점은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넘어,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공공/국가는 자본을 위해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목표로 노동자와 지역주민, 자연에 대한 엄청난 착취와 수탈, 폭력을 자행해왔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내걸고 ‘에너지 시장화 상품화’에 공공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공공과 국가의 역할을 자본축적의 보조자에서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전면적인 계획/조정자로 바꾸자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정치를 통해 공공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선 공공/국가는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려는 자본의 보조자나 화력-핵발전 체제 수호세력이 될 뿐이다.

 

정의로운 전환, 누가?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과 함께

기후정의운동은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이 앞장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외쳐왔다. 기후위기의 피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중요하다면서 농민들의 삶터 곳곳에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태양광 풍력발전 시설들, 온실가스 감축해야 한다며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행태 속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발전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반대, 재생에너지 반대가 아닌, ‘공공적, 민주적, 생태적 에너지’를 요구하며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곳곳의 농민시위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이 있었다. 지금 이 체제에서도 억압받고 소외당해온 이들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또 다른 피해와 억압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 투쟁의 구호들은 ‘기후위기 대응 반대’가 되고 있다. 지금 발전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외치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위력적인 투쟁이 되지 못한다면, 유럽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유럽은 우리에게 기후위기 대응의 모범사례가 아니다.

당장 2025년말부터 충남 태안 1, 2호기를 시작으로 매년 2~3개씩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 이로 인해 해고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 바로 이 발전 비정규노동자들이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며 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발전 HPS 노동자들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반대가 아니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보장하라며 나선 것이다. 이미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투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싸움을 제대로 벌여내지 못한다면, 기후정의운동이 이야기해왔던 ‘정의로운 전환’은 그냥 좋은 말과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 기후정의운동이 조직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출발로

당일 워크숍에 함께 한 활동가들은 여러 의견들을 제기했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 워크숍에서 제기하는 방향보다는 ‘에너지 정책’으로 이해되기 쉽다는 아쉬움 그리고 향후 정세에서 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이 투쟁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부정의한 기후위기 산업전환에 직면한 다양한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었다. 이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지금의 체제를 바꾸는 대중적-보편적 운동이 되기 위한 고민들이었다. 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이 포문을 연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앞으로 어떤 싸움의 장을 열어낼 것인지는 기후정의운동이 함께 만들어나갈 투쟁에 달려있다. 이 싸움이 의미 있는 파고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당연히 ‘에너지 분야’에 그치지 않고, 곳곳의 다양한 영역과 의제들에서 전환의 주체로 최일선 당사자들이 조직하는 대중운동으로 번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