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존엄’이라는 무거운 질문

2011년 7월, 남해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과 청주의 70대 노인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으로 인해 수급 탈락을 통보받고 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고민하다 투신했다. 2012년 2월엔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이 자녀 소득으로 수급에서 탈락하자 집에 불을 내 자살했고, 9월엔 치매부인의 기초생활수급 탈락을 염려한 서울의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투신했다. 11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조차 없던 할머니와 손주는 촛불로 추위를 녹이다 화재로 사망했다. 2013년 9월, 신장투석환자였던 부산의 한 아버지는 딸의 취업으로 인한 수급 탈락 통보를 받고 딸에게 병원비를 부담시킬 수 없어 자살했다.(김윤영, <국가가 휘두르는 가족이라는 흉기 ‘부양의무자기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2주년 자료집 중)

 

나라에서 포기한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 모두가 포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건 일부 노인들의 문제니까. 일부 장애인들의 문제일 뿐이니까. 우리나라의 주요한 복지 제도 중 하나인 기초생활수급권제도에서 부양의무제가 문제라는 말은 내가 들어본 것만도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는 기본적으로 가족에게 1차적인 책임을 지우고 있는데(사실 이건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부양의무제가 언급된다. 이에 대해 나도 잘은 모르지만, 돈을 벌기 힘든 상황에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최소한의(그야말로!) 생계유지를 공동체가 보장해주는 취지로 실시하고 있는 제도가 기초생활수급권제도이다. 정말, 죽지 않을 만큼만 생활비를 지원해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가족 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을 수 없다. 그 가족이 실제로 생활비를 주든 안 주든, 얼마를 주든 공무원들은 제도는 관심이 없다. 그저 부양의무제는 “당신은 당신을 부양할 (수도 있는) 가족이 있으니 그 가족에게 당신을 책임지라고 하시오.”라는 말만 반복할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강제로)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나조차도 잘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이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8월 21일~22일 장애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3주년 행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무려 3년 동안 거리에서 먹고 자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인권단체에 한 발이나마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농성 소식을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더 이상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나는, 공포스러웠다.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아직’ 누구도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지 않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부양의무제와도 꽤 거리가 멀지만, 요즘 나는 그 ‘가난한 사람들’과 나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불안한 마음으로 응시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만이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인생 알 수 없는 거다. 자칫 불의의 사고라도 나면,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사회의 노인 빈곤율이 40%라던가, 50%라던가. 왠지 나는 그 40% 내지는 50%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이건 개인적인 낙관/비관의 문제가 아니다. ‘희망’을 말하는 이 사회의 근거 없는 낙관이 오히려 무책임하게 여겨진다. 나는 부양의무제의 폐해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도 끔찍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행복’이나 ‘정의’ 따위의 아름다운 목표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감내해야만 하는 모욕적인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나의 모든 역사와 관계를 부정하며 그 사람들이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호소해야 한다거나 우리 가족들은 모두 무능력해서 나를 부양해줄 수 없으니 나라라도 나를 구제해 달라며 나 자신을 자기파괴적으로 증명해야 할 순간을 과연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나의 비참함을 꼭 이렇게까지 전시해야 사람들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는 걸까. 처음에 언급한 사례들에서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아니었을까.

 

이때 내 머릿속에 ‘존엄’이라는 말이 뛰어 들어왔다. ‘존엄’은 처음 들은 말도 아니고 인권운동을 하면서 관성적으로 내거는 일종의 ‘수사’와도 같은 말이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다. 그러다가 왠지 나에겐 껍데기만 있었던 것 같은 이 말이 육신(肉身)을 갖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년 5개월쯤 전.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재활병원에 장기입원하면서부터 나도 병원이란 곳에서 가끔이라면 가끔, 자주라면 자주 숙식 생활을 하게 됐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에 항상 드는 느낌인데, 병원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다. 너무 이질적이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것처럼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병원이 보이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검은 동굴 속 저 편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병원은, 재활병원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의미에 대해서 툭툭 질문을 던지곤 했다.

 

병원에 벌써 2년이나 있었다던 환자 할아버지의 간병인 아내 할머니는 정말 끔찍하게 할아버지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욕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일상 생활적인 욕부터 해서 삶에 대한 푸념과 저주, 그리고 심지어는 ‘어떻게 저런 말까지 할 수 있나’싶을 정도로 인격 모독적인 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끊임없이 욕을 하고 있었다. 병원 5인실에서 생활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10명과 함께 보내게 된다.(환자 5명, 간병인 5명) 적지 않은 이 낯선 사람들과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4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을 때조차 ‘저건 진짜 너무 한다’싶은 욕을 할머니가 퍼붓고 있었을 때, 문득 마음이 공허해지며 ‘산다는 게 뭘까?’하는 생각이 난데없이 떠올랐다. 저런 욕을 하거나 듣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그리고 거동도 할 수 없어 침대 위에 계신 아버지는 매일매일 이 끔찍한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계실지도 궁금해졌다. 할머니의 끔찍했던 욕은 할머니에게나 할아버지에게나, 그리고 그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겐 잘해줬다. 도대체 이 삶은 어디에서부터 어긋나게 된 것일까. 우리에게 살아가는 의미는 뭘까.

 

그리고 한 번은 내 또래의 청년이 꽤나 심한 중증 환자로 있었다. 벌써 꽤 오래전에 교통사고가 났던 것 같다. 교통사고 후 그 청년은 자력으로는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말도 할 수 없었고 의사표현도 잘할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도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의대에 다녔다던가, 한때는 촉망받았을 그가 어떠한 지적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채로 온전히 다른 사람의 힘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그 청년이 지각하고 있었다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청년은 스트레스 때문인 듯 가끔씩 뚜렷한 대상도 없이 발작에 가까운 ‘울분’을 터뜨리곤 했다. 그럴 땐 병실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했다. 울산이 집이라는 그 청년의 어머니는 타지에서 몇 년 동안 아들 간병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주 현명하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늘 지쳐 보였다. 과연 그 청년과 어머니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 이와 같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언제까지?

 

산재 사고를 당해 숨 쉬는 것 외에 생각하는 것(아마)도 먹는 것도 배설하는 것도 아무것도 스스로는 할 수 없었던 아저씨, 한때는 고등학교 교사였다는데 치매가 심해져서 늘 한 손이 침대에 묶여 있고 정상적인 정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 같던 할아버지, 그 분들은 모두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존엄’이라는 깊은 질문을 떠안게 됐다. ‘존엄’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듯한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간의 존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요구도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질문이자 요구일 것이다.

 

사실, 인권운동에서 ‘인간의 존엄성/존엄’이 너무 수사에만 그치는 껍데기뿐인 말로 사용되는 것 같아 불만인 적도 많았다. 왠지 과장만 남고 실내용은 전혀 공유되지 못하는 느낌. 하지만 그게 껍데기뿐이었는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온전히 판단할 수 있나. 어차피 사람들의 공감 능력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너의 어려움을 내가 다 이해해.”라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 내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의 경험, 혹은 최대한 비슷한 경험을 가능한 많이 하는 것뿐이라고 하던데, 내가 다른 사람이 사용한 ‘존엄’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맥락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니까.

 

병원에서 남은 삶을 보내게 되신 아버지도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겪어 내고 계시겠지만,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부양’하는 일은 나에게나 우리 가족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양의 책임은 대부분 가족에게 지워지고 있다.(건강보험도 한계적이지만, 건강보험만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코 책임질 수 없다) 여기에 가난하기까지 하다면 절망에 절망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인생 알 수 없는 일, 누구나 노인이 되고, 사고가 나서 죽거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금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나.(적어도 나는 그렇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인데도 왜 공동체는 아무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걸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 고민해볼 수는 없는 걸까. 아무리 공감에 한계가 많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