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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2009년 오늘 내가 있는 자리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라는 명찰을 달고 산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네요. 작년 7월 중순경에 입방을 했으니... 처음 3개월이 지날 때쯤 여러 사람들이 활동해보니 어떠냐고 물었었어요. 5월부터 계속된 촛불집회, 천일이 넘도록 싸우고 백일이 넘도록 단식했던 기륭분회 투쟁, 그리고 정당한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짓눌렀던 경찰과 정부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연일 일정들이 있어 바삐 다녔던 3개월, 그러나 막상 3개월이 지나서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어쩌면 그렇게 기억이 안나던지... 이렇게 활동을 하면 내게 남는 것이 무얼까 고민하면서 막상 입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같이 식사를 해먹고 하루의 끝을 술 한 잔 나누며 함께 끝내는 것, 무수히 많은 회의에 참여하는 것, 사무실로 오는 다양한 전화에 “예, 인권운동사랑방입니다”로 말문을 떼는 것, 그렇게 사랑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1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조용하고 여릴 것 같아 걱정했다던 주변 활동가들은 잘못 봤다면서 막말민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야 제 속내를 안 것이지요. (크크)

올해 초부터 총무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꼼꼼하지 않고 덜렁거리는 탓에 실수할 때가 참 많아요. 총무 업무를 본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 번은 사람사랑 우편물 라벨지를 출력하는데 16칸 종이에 24칸으로 인쇄해 일일이 가위로 오려서 붙였던 적이 있습니다. 기가 차서 웃다 울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난스레 얘기한 것처럼 총무 업무를 6년 하게 되면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활동하는 즐거움을 처음 맛보았던 때가 수도법 개악을 막아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돗물로 장사를 해보겠다는 정부의 민영화 조치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던 작년 이맘 때, 여러 시민들을 만나면서 국회의원들에게 우리의 의견을 알리는 엽서 보내기 운동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매일 날라오는 수도법 개악 반대 엽서에 의원실에서 적잖이 당황했었다고 하더라구요. 

최근에는 용산국민법정 준비를 같이 했습니다. 좋아하는 술도 자제해가면서,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것을 유보하면서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용산국민법정 준비에 쏟았습니다. 10월 18일 국민법정이 열리는 가톨릭회관은 용산이 진실의 꽃으로 살아나길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 붐볐습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지쳐 막판 법정 하이라이트인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 때 정작 사람들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정말 기뻤어요. ‘아직 용산이 잊혀지지 않았구나’ 안도감도 들고, 뭔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국민법정에 세운 피고인들이 모두 유죄를 받았는데, 법정을 마치고 나오는 유족 분들이 마치 진짜 재판에서 이긴 것처럼 너무도 환한 웃음을 머금으시면서 주변 분들과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느꼈던 기분, 벅찬 기분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처음으로 느껴봤던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웃음을 보기 위해 내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것이구나’ 새삼스레 활동을 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싸워야 할 현실은 여전히 완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오롯이 검찰 편을 들어준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1심 판결, 과정은 잘못 되었어도 결과는 잘못되지 않았다며 미디어법 통과를 옹호해준 헌재 판결, 정의는커녕 상식조차 남아있지 않아 보이는 현실이 답답해 크게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현실을 모른 척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물스물 올라오는 마음과 함께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일주일 째 단식을 하고 있는 용산 범대위 활동가들, 미디어법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운 날씨에도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네티즌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떻게 살아가고 활동할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랑방 활동가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어느새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여기였지’ 정리가 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11월로 바뀌자마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제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남은 2009년도, 앞으로 만날 2010년도 제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 날 용산국민법정에서 봤던 최고의 웃음을 계속 보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