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 고려대 청소아줌마들의 ‘엇박자’ 팔뚝질은 아름다웠다.

지난 7월 1일 고려대 한 건물 지하강당이 술렁였다. 백여 석의 의자가 모자라 땅바닥까지 그 공간을 꽉 채운 이들은 바로 고려대를 닦고 미는 청소노동자들.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아줌마, 할머니 청소노동자들의 주름진 얼굴은 웃음으로 활짝 펴 있다. 참으로 기다렸던 그 날, 고대 청소노동자들은 위풍 당당하게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았다. 그 날, 처음 들어봄직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춘 할머니 노동자들의 ‘엇박자’ 팔뚝질은 그 어느 것보다 힘찼다.

노동자들에게 전국시설관리노조 고려대지부 창립총회가 열렸던 그 지하 강당은 이미 익숙한 곳이었다. 지난 6월부터 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거의 매일 그곳에 모여 해고의 두려움을 토로하고, 노동시간 연장에 대한 분노를 말하고, ‘똘똘 뭉쳐 싸우자’를 외쳤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힘든 결정들을 용기 있게 내려왔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고용승계하지 않으면 근로계약서에 도장찍지 않을 것을 결정했고, 지금도 허리가 휘는데 야간근로까지 시켜달라고 용역업체에 주문하는 학교를 상대로 싸울 것을 결정했고, 본관 앞 집회에 이어 본관 점거 투쟁을 직접 결정했다.

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이 노동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 고려대 학생모임인 ‘불안정노동철폐를주도할거야(이하 불철주야)’가 마련한 ‘학내 미화원 여성노동자와의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 어머님들한테(주로 편안하게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말 걸기가 쑥스러웠는지... 당시 우리 팀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따른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대표적인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집단인 대학 내 청소노동자 문제에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가 먼저 접촉을 시도한 쪽은 불철주야 학생들. 학내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는 불철주야는 대학생 모임으로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우리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먼저 만나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접근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판단이 있어서였다.

우리의 생각은 이랬다.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철폐하는데 있어서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는 투쟁이야말로 의미있는 것이지만,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그들에게 그 싸움은 생계를 걸어야 하는 만큼 절대적으로 힘든 과정이다. 때문에 당사자들의 싸움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운동주체가 튼튼히 서야 하고 선도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그 운동주체는 학생-교수여야 하며, 그들의 선도적인 투쟁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개인적인 열악한 삶의 조건을 인권의 문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또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저항하는 운동주체를 확장시키는 의미가 있다. 우선, 학생-교수-사회단체의 연대행동으로 운동의 흐름을 만들자'

우리에게도 존엄성이 있다

지금도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고대 청소노동자들과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 생각에 중대한 실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저항의 몸부림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임에 분명했지만, 스스로 존엄성을 느끼는 인간이며 그 자존심마저 부정하는 억압에는 더 이상 분노를 참지 않았다. 예상되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더 이상 그 분노의 표출을 막을 수 없었다. 싸움의 정당함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그들을 무장시켰다.

고대 청소노동자들... 아줌마, 할머니 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은 새벽 5시이다. 근로계약서상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이지만, 그렇게 출근해서는 일인당 5백 평에 달하는 광활한 담당구역을 청소해낼 수 없다. 학교와 용역업체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새벽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임금에서도 빼 왔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임금은 에누리도 없는 65만원! 모든 수당을 다 포함해서다. 월차니 연차니 하는 휴가는 애초에 허용되지도 않는다. 심하지 않는가? 그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나이 들먹이며, 나가라고 협박한다. 반장, 소장격의 남성 중간관리자들로부터 모욕적인 말과 협박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예 일상이다. 노동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일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계약 해지. 그들 중에는 10년 넘게 고려대에서 일한 노동자도 있지만 언제나 1년짜리 계약직으로 신입사원이다. ‘1년 후에 계약해지 된 후 다시 채용되지 않으면 어쩌나’ 두려워 바른말도 못한다.

10년 넘게 일해도 만년 신입사원
올해도 어김없이 4월에 계약만료 시기가 돌아왔다. 그런데 유난히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번엔 60세 이상은 고용승계 안 시켜준다더라’, ‘야간근로까지 해야된다더라’ 그런데 고려대 측은 소문의 진상을 따져 묻는 학생들의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용역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5월이 왔고, 노동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월 초, 노동자들은 불철주야 학생들의 제안에 따라 건물별 대표자 회의격인 고대미화원협의회를 구성하고 용역계약을 둘러싼 진행 상황들을 공유하기로 했다. 우리도 긴장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고려대는 용역입찰업체 프리젠테이션을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노동시간연장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그 소식에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 더 일하란 것이냐고.

고대 미화원협의회는 더 이상 대표자모임이 아니라 전체노동자 총회가 되어갔고, 이제 매일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사회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고용승계보장과 노동강도 강화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사회단체 집회를 고려대 본관 앞에서 벌였다. 노동자들의 투쟁결의도 높아져갔고, 야간근로를 계약조건으로 내건 용역업체 두 곳이 선정됐다는 소식 직후, 노동자들은 찬반투표를 통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는 근로계약서에는 도장을 찍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날 본관 앞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집회를 벌일 것을 결정했다. 백 명이 훌쩍 넘는 아줌마, 할머니 청소노동자들이 잘 정돈된 본관 앞 잔디광장을 점거한 날, 그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비보가 날아들었다. 용역계약서에 60세 이상은 고용승계하지 않을 것을 명시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절반 넘는 노동자들을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노동자들은 점심 시간 동안 본관을 점거하고, 목청껏 그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외쳤다. 그 날 학교는 전원 고용승계 보장과 정년제한 삭제를 용역계약서에 명시하겠다는 약속을 통보해왔다. 감격스러운 반쪽의 승리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노조를 결성했다. 아줌마. 할머니 노동자들의 용기 있는 투쟁은, 이 글에 다 담지 못했지만, 대충 이런 것이었다.

아줌마. 할머니 노동자들의 용기 있는 투쟁
새벽 4시면 집에서 나와 땀에 흠뻑 젖어 청소를 하고 집에 돌아가 집안 일을 해야하는 그 고된 일상에도, 퇴근 후에 매일 같이 총회에 참석해 진지하게 어려운 결정들을 내려온 백여 명의 할머니 노동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이 있는 건물 건물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요구를 듣고, 때로는 힘든 설득을 하고, 용기를 주는 일들을 지치지 않고 해 낸 학생들과 활동가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노동자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동안 빼앗겨 온 것이 너무 많아 그걸 되찾는데도 꽤 지리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1년 후엔 올해와 똑같은 투쟁을 또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 투쟁과정에서 노조의 존립자체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 노동자들은 요즘 즐겁다. 노조를 만든 것이 스스로 너무 신기하다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떨리지만 신난다고 하신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빗자루 놓으면 고려대는 단 하루도 교문을 열지 못 할거야”

인권운동도 갈 길이 멀다. 노동의 가치에 걸맞는 임금을 쟁취하고, 저임금으로 인한 인권이 박탈된 삶의 조건을 없애려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달릴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go top